52. 自敍帖(唐, 懷素)
이 작품은 회소의 나이 41세 때 쓴 대표작이다.
회소(懷素, 737-799)의 자는 장진(藏眞)이고 속성은 전(錢)이며 호남성 장사(長沙) 사람이다. 어렸을 때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종이 살 돈이 없어 옛날 동산에 파초 만 그루를 심어 그 잎사귀로 종이를 대신했기 때문에 ‘회소서초(懷素書蕉)’라고 일컬었다. 그래도 글씨 쓰기가 부족하여 칠을 한 소반과 모난 널빤지를 대신하여 몇 번이나 뚫었을 정도로 열심히 글씨를 썼다. 성격이 활달하고 자유로우며 작은 행동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술을 즐겨 하루에도 9번이나 취했으며, 술이 거나하여 흥이 나면 절의 담벼락이나 옷 또는 그릇 등에다 뜻에 따라 글씨를 썼기 때문에 당시 사람이 ‘광승(狂僧)’ 혹은 ‘취소(醉素)’라고 불렀다. 그는 용필의 진수를 얻기 위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두루 다니며 좋은 친구와 스승을 찾아다니면서 이전 사람의 명적도 널리 보았다. 그가 빌린 두루마리의 묵적이 더럽게 되도록 임서를 해도 사대부들은 그를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뒤에 장욱의 학생인 오동(鄔彤)과 안진경을 알게 되어 그들로부터 장욱의 필법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여름구름에 기이한 봉우리가 많은 것을 보고 항상 이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통쾌한 곳은 마치 나는 새가 숲에서 나오고 놀란 뱀이 풀에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벽이 갈라지는 길이 하나하나가 자연스러운 것을 보고 필의를 깨우쳐 스스로 초서삼매를 얻었다고 했다. 이는 뜻을 씀이 한결같으면서 하나에만 정신을 집중한 결과이기도 하다. 당시 명사인 이백(李白), 대숙륜(戴叔倫), 두기(竇臮), 전기(錢起) 등이 모두 시를 지어 회소의 서예를 칭찬했다. 그는 장욱과 이름을 나란히 하여 ‘전장취소(顚張醉素)’라고 불렸다. 전하는 그의 작품으로는 <자서첩(自敍帖)>, <성모첩(聖母帖)>, <고순첩(苦筍帖)>, <소초천자문(小草千字文)>, <장진율공첩(藏眞律公帖)> 등이 있다.
<자서첩>은 종이에 쓴 묵적으로 초서로 162행에다 698자를 썼다. 이는 대력(大曆) 12년(777)에 쓴 것으로 송나라 때 몇 본이 전해졌으나 지금은 그 중의 하나만 남아 현재 대만고궁박물원에 수장되어 있다. 내용은 주로 그가 서예를 배운 과정과 당시 명사들이 그에 대한 찬미와 평가를 기록했다. 이는 세상에 전해지는 작품 중에서 회소의 작풍을 가장 대표하는 것으로 그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필치가 가늘고 긴밀하면서 점과 획이 낭자하다. 흔히들 그를 장욱에 비교하여 ‘장비소수(張肥素瘦)’라고 하는데, 이 작품과 장욱의 <고시사첩(古詩四帖)>이 좋은 대조를 이룬다. 확실히 이 작품은 장욱의 것에 비해 더욱 파리하고 긴밀한데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이 작품의 용필은 전적으로 뾰족한 부분으로만 써서 마르거나 윤택하지 않고 뜻이 마치 철망을 에워싼 것과 같아 파리하고 긴밀한 신운을 얻었다. 다른 하나는 회소가 이 작품을 쓴 붓은 비교적 작은 것이어서 가장 굵은 필획이라도 마지막 행의 ‘玄奧’에서 ‘奧’자의 세로획보다 굵지 않으며, 붓털도 비교적 강하여 완전히 펼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광초에 속하고 사전을 위주로 하면서 점과 획을 낭자하게 처리했다. 점은 성정의 묘를 얻었고 전환함은 절차고의 근을 얻었으며, 비록 자태가 미친 듯 표일하나 붓을 일으키고 거두고 전절함에 하나도 법도에 맞지 않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글자체도 규범적이다. 이는 광초에서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곳이기 하다. 초서는 해서와 달리 글자체의 요구가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초서에서 만일 점하나라도 잘못되면 신선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문징명은 제발에서 “회소의 글씨는 마치 맑고 규율을 지키지 않은 승려가 지고한 경지에 진입한 것과 같이 광괴한 곳에서 점 하나도 법도에 합하지 않음이 없다. 소동파가 ‘마치 후인이 배를 조정함에 처음에 언덕에 다다르는가에 뜻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천변만화의 변화가 일어나도 행동거지가 태연자약했다.’라고 했는데 <자서첩>은 이를 유감없이 발휘했다.”라고 했다.
자태가 미친 듯 표일하며 기운이 성하고 정신이 족하여 모든 변화를 붓 끝에 담아 성정을 종이에 쏟아내었다. 글자의 형체와 필세는 일필로 이루었다. 이는 마치 작품에서 묘사한 “뱀이 달아나고 살모사가 달리는 형세가 자리에 들어가고, 소낙비와 회오리바람 소리가 집에 가득하다.”라는 말과 “붓 아래에서 오직 전류를 치는 것만 보고, 글자의 이룸은 단지 서린 용이 달림을 두려워하네.”라는 말과 같다. 써내려가면서 후반에 이를수록 더욱 미친 듯 표일해져 심지어 한 글자가 한 행에 이르면서 취하고 미친 정을 금할 수 없으니 강산의 도움과 풍우의 정을 얻은 것 같다. 이는 진실로 “외로운 구름이 태허에 의지하며 미친 듯 와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취한 속에서 참다움을 얻었다.”라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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