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과 글감/도곡논단

愚公 辛知勳의 서예전에 부쳐

향수산인 2013. 11. 19. 16:05

 

 

 

手與神運 藝從心得

- 愚公 辛知勳의 서예전에 부쳐 -

 

“쓰다버린 붓이 산과 같아도 진귀할 수 없다네. 만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神明이 통하니.(退筆如山未足珍 讀書萬卷始通神)” 手中에 좋은 법첩이 있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 부단한 노력을 한다면 筋骨이 풍부하고 세련된 글씨를 쓸 수 있을 것이나, 여기에 學識과 人品이 더해져야 더 높은 경지의 글씨를 쓸 수 있음을 蘇東坡는 말하고 있다. 인품이 높으면 운필이 端雅하여 필획에 속된 느낌이 없어지고, 많은 글을 읽어 머릿속에 세상만물이 담겨있다면 書卷氣가 자연스럽게 작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書家 辛知勳을 떠올리면 문득 생각나는 글귀가 바로 ‘愚公移山’이다. 『列子』를 보면, 먼 옛날 나이가 90이나 된 愚公이 집 앞뒤를 가로막고 있어 통행에 불편을 주고 있는 太行山과 王玉山을 옮겼다는 故事가 나온다. 성능 좋은 기계는커녕 변변한 도구조차 없는 그 옛날에 산을 옮기려 하다니! 얼마나 많은 세월과 忍苦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가?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든 90세 늙은이가 흙을 삼태기에 담아 왕복 일 년이나 걸리는 발해에 갖다 버리니 결국 한해에 삼태기 하나 옮긴다. 아니 그렇게 불편하면 차라리 집을 옮기지 어찌 그 큰 산을 옮겨? 젊었을 땐 뭐하다가 그 지긋한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게다가 여기에 찬성을 한 아들 손자들은 제정신인가? 내가 죽으면 아들이 하고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하고…… 여기에 이르러선 황당함이 극에 달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서예를 하다 보니 이 故事에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 느껴진다. 지금 필자의 눈앞에도 점점 더 커 보이는 ‘文字香’ ‘書卷氣’라는 두 개의 산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고 나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당장 서예를 그만두면 집을 이사하는 것과 같이 간단한 일이요, 그 속에서 욕심없이 즐기고 살면 이사할 걱정마저 사라질 것이나, 이미 여러 해에 걸쳐 단단히 중독되었으니 이젠 포기할 수도 없다. 우공이 왜 90의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우공은 전북 고창 출신의 서예가이다. 그는 艸丁 權昌倫을 사사하여 서예와 전각을 익혔고, 문인화는 溪丁 閔利植을 사사했으며, 한시는 玄巖 蘇秉敦을 통해 배웠다. 우공의 글씨는 어느 서체를 막론하고 멀리서도 그의 작품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처럼 독특하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서예가는 드물다. 學書者 대부분이 법첩을 보고 그 모양만을 따르며 스승의 체본을 그대로 모사하는데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우공이 과거와 생각들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보인다. “중간에 선생님께 작품을 보여드리면 그릇된 점이 덜 드러날 것이나 결국 스승의 스타일로 다가갈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서야 보여드렸다.”고 한다. 혼자 공부를 하다보면 결정해야 할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나면 처음에는 별 것 아니나 멀리가고 오래되면 천리만큼의 오차가 생길 수도 있음을 잘 알기에 두려움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글씨에는 자기의 성정을 발휘하여야 한다. 임모를 하는 것도 그 용필을 취하는 것이지 겉모양만을 똑같게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필력을 얻어 근골혈육을 갖췄다면 세상만물을 가슴속에 담아 그것을 붓을 통해 뿜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손은 정신과 함께 움직이고 예술은 자신의 깊은 마음으로부터 흘러넘치는 것이리라.

 

이번 전시에 한문서예는 약 사십 여점이 출품되고 있다. 서체별로는 예서와 전서를 비롯하여 행초와 해서가 발표되고 있으며, 내용면으로 보면 中國詩賦・韓國漢詩・嘉言・對聯・故事成語 등이 주류를 이룬다. 한글은 畵題나 夾書에 자주 보이며, 문인화는 26점정도 출품되고 있는데 문인화서각과 蓮・松・竹・梅・鳥・茶碗・書室 등을 주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낸다. 자신이 생각하고 의도하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하물며 작품을 하기 위해 심사숙고해서 문구를 고르고 각각의 素材를 골라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이르러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번 개인전은 華甲에 즈음한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작품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짙게 묻어난다. 한문의 <落葉歸根> <獨坐敬亭山> <沈休文詩> <歸田園居> <次玄悟軸中韻> <古松> <陋室銘> <父母子孫> <羈鳥・池魚> 등이나, 대부분의 문인화를 둘러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夢筆生花> <漁父辭> <聖經句> <根深葉茂> <愛敬> <綠水・靑山> <學然後知不足> <荀子句> <兢齋先生詩句> <神酣・味足> <飽德・滿堂>등을 보면 욕심없는 삶과 용맹정진의 신념이 느껴진다. 우공이 어떻게 글씨를 써왔고 그동안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왔는지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 중 <夢筆生花>는 아마 황산에 있는 붓과 같이 뾰족하게 서있는 바위와 그 위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한 소나무를 보고 작품화한 것 같다.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전해오는 고사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봄날 이백이 황산에 올라 경치에 흠뻑 취해 큰소리로 시를 읊었다. 이를 듣고 있던 노승이 紙筆墨硯을 가지고 와서 對酌하며 詩文을 주고받았다. 많은 시간이 흐르자 이백은 술에 취했고, 급기야 시문을 다 완성하지 못한 채 붓을 던지고 노승과 고별했다. 노승이 이백을 배웅하고 돌아와 보니, 붓이 녹아내린 후 그 자리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바위가 되어 솟아올랐다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좌우간, 고독하게 서있는 큰 바위 위에 외로이 서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경탄을 자아낼 정도의 절경이다. 이를 보면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끝내 꽃 피워내고 말겠다는 각오 역시 생겨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필획은 다른 작품에서보다 더욱 강인하고 대담하다. 夢은 많은 사연을 담은 것처럼 복잡하고, 달콤한 꿈에 부푼 것처럼 필획들이 편안하게 늘어서 있다. 筆의 세로획은 벼루에 먹을 찍어 한참을 써내려간 필봉처럼 말라가나 당장이라도 지면에 힘찬 필획을 긋고 싶을 정도의 위세가 있다. 生에 이르러서는 그 峻澁이 극에 이른다. 필봉과 같이 천년만년 비바람을 견디며 서있을 것 같은 굳은 세로획을 스치며, 가로획들은 쿵하고 나타났다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하고, 꽃잎을 흔드는 봄바람처럼 살랑대기도 하며, 파도가 몰아치듯 거칠게 일렁이다가 해안에 부딪혀 급작스럽게 튀어 오르는 기세도 있다. 華는 花와 같다. 다시 필획이 유해진다. 모진 풍파를 견디며 오랜 세월을 견뎌낸 바위와 소나무를 생각하고 그은 것일까? 세로획만큼은 더욱 遒勁하다. 붓에 꽃이 피었다하나 그 꽃은 여린 꽃이 아니라 굳센 소나무임을 말하는 것 같다.

 

이번 우공의 문인화 작품을 살펴보면 한문서예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정보다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난다.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나와 그랬는지 어릴 때 좋은 추억이 많아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욕심없이 正道를 걷고자 하는 그런 삶의 모습도 절절하다.

 

우공의 그림을 보다보면 동화같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달과 별이 비추는 방안엔 어김없이 촛불이 켜져 있고 기도하는 여인이 등장하거나 책을 읽는 서생의 모습이 보인다. 여인은 아마도 멀리 떠나간 자식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일 것이요, 서생은 고향을 떠나와 부지런히 공부하는 아들일 게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멍멍 짖으며 꼬리를 치고 달려들 개가 보이고, 작은 새 한두 마리 놀러와 정적을 깨는 작은 초가집도 보인다. 방안으로 들어가면 술잔이 아닌 찻잔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고 서가에는 책이 쌓여 있다. 밤이 되면 등잔불이 켜지나 문은 열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서적 속에 古人과 交遊하고 싶은 것인지, 天地와 疏通하고 싶은 것인지, 내 마음을 자연에 던져버리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방안엔 달빛이 들어오고 하늘엔 별빛이 반짝이지만 그림에는 삐뚤어진 모습이 없다. 선도 바르고 사람도 바르다.

 

우공은 漢文作詩가 가능한 한국의 몇 안 되는 서예가중에 하나이다. ‘三淸詩社’는 2001년 10월 13일 운현궁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 모임은 17세기말 삼청동 一圓을 기점한 선비들의 詩文化를 오늘에 되살리며, 서예인으로서 전통학문이자 문화의 뿌리인 漢詩를 계승・발전시키고자 발족한 모임이다. 삼개단체 초대작가들 중 작시가 가능한 사람만이 입회할 수 있으니 삼청시사회원이라면 서예와 작시가 모두 능한 사람들이다. 당시에는 ‘三淸吟社’로 출발하였으나 2003년 창립전을 준비하면서 會名이 대중에게 낯설다는 주장이 있어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우공은 현재 이 三淸詩社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우공은 한문서예를 비롯하여 문인화 전각 한글 그리고 한시까지 고르게 공부한 노력파 서예가이다. 듣자니 우공은 쉬는 날도 끊임없이 서예에 전념한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을 수십 년간 이어왔으니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노력이 있으면 반드시 그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비롯하여 우공의 필운도 건강도 행운도 따르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계사년 가을 近思齋에서 陶谷 洪愚基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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