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산인 2017. 6. 7. 21:15

勿緇柱詩

陶谷 洪愚基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본관은 은진(恩津)이요 자는 영보(英甫)이며 호는 우암(尤菴)우재(尤齋)이다. 송시열의 학문은 전적으로 주자(朱子)의 학설을 계승했으나, 조광조(趙光祖)에서 이이(李珥)와 김장생(金長生)으로 이어진 조선기호학파의 학통을 충실히 계승발전시킨 것이다. 그의 성리학은 조선 중기의 철학·정치·사회사상을 정립하였고, 그가 이끈 노론(老論)은 조선 중후기 정치사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시(((((소차(疏箚) 등 모든 글에 능했으나, 특히 비((지문(誌文) 등 묘문에 명성이 있었다. 우암의 방대한 글은 송자대전(宋子大全)에 남았는데, 그중에 <답김연지(答金延之)>라는 글이 있어 그 일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어떤 사람이 선생께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오실 때 영동(嶺東) 촌가(村家)에 이르렀는데 시구(詩句)를 써놓은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구에 三傳市虎人皆信 一掇裙蜂父亦疑 世上功名看木鴈 座中談笑愼桑龜 라 쓰였고 그 일이 너무나 괴이하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다가 갑자기 큰비를 만나 양양(襄陽) 물치촌(勿緇村)의 양민 정립(鄭立)의 집으로 달려 들어갔었는데, 그 집 기둥에 그와 같은 시가 있었네. 그런데 위 구절은 바로 쓰고 아래 구절은 거꾸로 써져 있더라구. 주인에게 물으니 지난해 5월 상놈도 같고 양반도 같은 과객이 있었는데 이를 써 주고 갔다.’고 말했지. 그 필적을 보니 질박하면서도 자못 익숙하였다네.” “뽕나무와 거북의 출처는 일찍이 보았습니까?”라고 하니 외서(外書)에 동해(東海) 사람이 신령한 거북이 한 마리를 잡았는데 거북이가 스스로 말하길, ‘천하의 나무를 다 태워도 나를 삶아 죽일 수 없을 것이다.’고 하자, 어느 도인이 모처의 마른 뽕나무로 삶아도 죽지 않으랴?’고 말하니, 거북이가 곧 머리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였네. 이 말을 들으니 오늘 좌중에서 한가하게 담소하는 것도 경계해야함을 알 수 있었지. 그러나 나는 이미 솥에 든 고기가 되었으니 털로 태워도 곧 문드러질 수 있네. 어찌 뽕나무까지 쓸 필요가 있겠는가? 그날이 바로 윤527일이었지.” 정립이 또 말하기를, “그 사람이 이 글을 써 주고 가면서 명년 이날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였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 고 하였다네. 이 일은 매우 기이하지만 또한 함부로 말하지는 마시게.

(問有人言先生自北南遷時到嶺東村舍有題詩句者其詩曰三傳市虎人皆信一掇裙蜂父亦疑世上功名看木雁座中談笑愼桑龜其事頗異云云未知其然否自北南遷也猝遇大雨走入襄陽勿緇村良人鄭立家其屋柱有詩果如來示而但上句則順書下句則倒書問于主人則曰前年五月有過客似常漢亦似兩班者書此而去云其筆朴野而頗熟矣桑龜出處曾見否外書東海人得一靈龜龜自言盡天下之木亦不能烹殺我矣有道人曰烹之以某處枯桑亦不死乎龜卽垂頭流涕云云今日坐中閒談笑者亦可以知戒矣然如我則已成鼎魚雖燎之以毛而卽可糜爛矣何至必用桑乎其日卽閏五月廿七日也鄭立又言其人書此而去曰明年此日更來相訪云而尙不來也云大槩此事甚異而亦不須浪說也)

 

여기서 보이는 양양(襄陽) 물치(勿緇) 기둥에 쓰인 시 <물치주시(勿緇柱詩)>송자대전에서는 철()로 표현했지만 철()로도 많이 쓰고 안()과 안()은 같은 글자이므로 바꾸어 써도 무방하다. 여기에는 구절마다 고사(故事)가 담겨있어 이를 알고 이 시를 감상하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三傳市虎人皆信(삼전시호인개신)

一掇裙蜂父亦疑(일철군봉부역의)

世上功名看木鴈(세상공명간목안)

座中談笑愼桑龜(좌중담소신상구)

 

셋이 시장에서 호랑이 보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모두 믿고

치마 속에 벌 한 번만 털어내도 아비마저 의심한다.

세상 공명은 나무와 거위를 보는 것과 같고

좌중 담소라도 뽕나무와 거북이 같은 말을 삼가라.

 

첫 번째 구절인 三傳市虎人皆信은 위()의 대신 방총(龐蔥)에 관련한 고사이다. 사람들은 쉽게 그릇된 것을 믿지만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가슴앓이를 할 수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내용이다.

방총이 태자(太子)와 함께 한단(邯鄲)으로 인질(人質)이 되어 갈 때 위왕(魏王)에게 말하기를 지금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한다면 대왕은 믿으시겠습니까?” 하니, 왕이 아니지.”라고 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대왕께서는 이를 믿으시겠습니까?”하니, 왕은 과인이 의심해 볼 것이다.”라고 했다. 다시 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이를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과인은 믿는다.”라고 말했다. 방총이 말하길 시장에 호랑이가 없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호랑이가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진짜로 호랑이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한단(邯鄲)은 대량(大梁)과 멀리 떨어져 있고 의논하는 신하들도 세 사람이 넘을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를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니, 왕은 과인이 알고 있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방총은 떠났지만 참언(讒言)이 빠르게 전해졌다. 후에 태자는 인질이 풀려서도 왕을 볼 수 없게 되었다

(龐蔥與太子質於邯鄲謂魏王曰今一人言市有虎王信之乎王曰’‘二人言市有虎王信之乎王曰寡人疑之矣’‘三人言市有虎王信之乎王曰寡人信之矣龐蔥曰夫市之無虎明矣然而三人言而成虎今邯鄲去大梁也遠於市而議臣者過於三人願王察之王曰寡人自爲知於是辭行而讒言先至後太子罷質果不得見)

 

두 번째 구절인 一撤裙蜂父亦疑은 윤길보(尹吉甫)와 그의 아들 백기(伯奇)에 관련한 고사이다. 이 역시 후처의 더러운 공작으로 인해 부자지간마저도 갈라놓는 불행을 소개한 글이다. 이 글을 보면 얼마나 신중하게 세상을 살펴보고 살아가야하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윤길보는 주나라의 공경(公卿)이다. 아들은 백기로 어머니가 일찍이 사망했다. 길보는 다시 후처에게 장가들었는데 후처는 아들을 무고하여 길보에게 말하기를 백기가 첩의 아름다움을 보고 사심이 있는 듯합니다길보가 말하길 백기는 착한데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후처가 말하길 첩을 빈방에 두고 당신은 다락에 올라가 살펴보세요.” 후처는 독한 벌을 잡아 옷속에 매어두고 백기로 하여금 이를 쫓아내도록 하였다. 이에 길보는 크게 노하여 들판으로 백기를 내쫓았다. 그 후 선왕이 놀러 나갔는데 길보가 이를 따랐다. 백기가 노래를 지어 이를 느끼고 있었다. 선왕이 이를 듣고 이는 쫓겨난 아들의 말이로다.”라고 하였다. 길보는 백기를 구하고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마침내 그 후처를 사살했다.

(尹吉甫周卿也子伯奇母早亡吉甫更娶後妻妻乃譖之於吉甫曰伯奇見妾美欲有邪心吉甫曰伯奇慈仁豈有此也妻曰置妾空房中君登樓察之妻乃取毒蜂綴衣領令伯奇掇之於是吉甫大怒放伯奇於野宣王出遊吉甫從之伯奇作歌以感之宣王聞之曰此放子之辭也吉甫乃求伯奇而感悟遂射殺其妻)


      세 번째 구절인 世上功名看木雁은 장자(莊子)남화경(南華經)에 보이는 고사이다. ()을 기러기라고 해석을 하는 것이 옳은지 거위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집에서 키우는 것은 거위가 맞을 것같아 거위로 해석했다. 이 역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장자가 산길을 가다가 잎과 가지가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다. 벌목하는 사람이 그 옆에 왔는데도 취하지 않았다. 그 연고를 묻자 말하길 쓸 데가 없다고 하였다. 장자가 말하기를 이 나무는 재목이 아니니 천수(天壽)를 다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장자가 산에서 나와 친구 집에 묵었는데 친구가 기뻐하며 아이에게 거위를 잡아 삶으라고 했다. 아이가 물었다. “한 놈은 잘 울고, 한 놈은 울지 못하는데 어떤 것을 잡을까요?” 하자 주인은 울지 못하는 놈을 잡으라고 했다. 다음날 제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어제 산에 있는 나무는 재목이 아니어서 천수를 다할 수 있었는데, 오늘 주인의 거위는 재목이 아니어서 죽었습니다. 선생은 어디에 서시렵니까?”

장자가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나는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중간에 처하겠다.”라고 하였다.

(莊子行於山中見大木枝葉盛茂伐木者止其旁而不取也問其故曰無所可用 莊子曰此木以不材得終其天年夫子出於山舍於故人之家故人喜命豎子殺雁而烹之豎子請曰其一能鳴其一不能鳴請奚殺主人曰殺不能鳴者明日弟子問於莊子曰昨日山中之木以不材得終其天年今主人之雁以不材死先生將何處莊子笑曰周將處乎材與不材之間)


네 번째 구절인 座中談笑愼桑龜는 송자대전에 있는 글과 비슷하나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로 대화를 하다보면 지지 않으려고 하지 말아야할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서로 과장해서 말하다가 결국 그것이 화근이 되어 스스로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한 효자가 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에게는 오랜 지병이 있었는데 아들의 극진한 간호에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아들은 온갖 좋은 약을 구하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녔건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수한 거북이를 고아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효자는 거북이를 찾아 길을 떠났다. 몇 날 며칠을 고생한 끝에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커다란 거북이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나 크고 무거운지, 거북이를 지게에 묶어 집으로 돌아오던 아들은 지친 나머지 커다란 뽕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 거북이가 거만하게 말했다. “나를 솥에 넣고 100년을 고아봐라. 내가 죽는가나처럼 영험한 거북은 아무리 오랫동안 끓여도 죽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구먼.” 이 말을 들은 뽕나무가 이내 대꾸를 했다. “이보게 큰소리치지 말게나. 자네가 아무리 신비한 힘이 있는 거북이라도 나 같은 뽕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우면 죽지 않을 수 없을 걸?”

집에 돌아온 아들은 잡아온 거북이를 3일 동안 고았지만, 거북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면 아버지 병세는 점점 위중해지고 있어 하루하루 초조함은 더해갔다. 방법을 고심하던 그는 잠결에 들었던 대화가 번뜩 생각났다. 허겁지겁 그 뽕나무를 베어다가 불을 때자 땔감의 발열량이 높은 덕에 거북이가 곧 죽는 것이 아닌가! 이후 거북이를 푹 고아 만든 약을 먹은 아버지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여기서 보이는 것처럼 이 <물치주시>는 어떤 알 수 없는 인물이 우암 송시열을 경계하여 써준 시로 전한다. <답김연지(答金延之)>라는 글은 머지않아 사약이 내려질 것이니 우암에게 미리 조심하라는 내용을 암시했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형식의 글을 한문에서는 전기(傳奇)’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