遊貴州有感
遊貴州有感
을미년 늦은 봄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한국서단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는 최재천의원 등과 한중문화우호협회 임직원, 중앙일보논설위원, 월간서예 최광렬 대표를 비롯한 각서단의 대표자들이 중국 귀주를 방문하였다. 관광으로 그 일정을 채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 목적이 茶酒와 書藝를 통한 한중교류였으므로 교류적인 차원에서 일을 진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貴州旅遊局의 지속적인 안내를 받으며 貴州省 貴陽市 安順市 遵義市 등의 성주 시장 부시장을 만나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틈틈이 黃菓樹瀑布를 보았고 ‘多彩貴州風’이라는 소수민족들의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으며, 大轉折의 계기가 되었던 遵義會議場所와 대규모 마오타이공장을 방문했다. 취환회장의 열정과 노력 덕분으로 여행하는 내내 우리는 풍성한 대접을 받고 그 비싼 마오타이주와 董酒 등을 마실 수 있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취필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나는 그간의 일정을 시로 쓰고 싶어 先韻으로 한 수의 시를 썼다.
乙未季春遊貴州有感
神工大瀑揷犀淵 신이 만든 큰 폭포 犀牛潭에 꽂혔고
多彩貴州苗女娟 다채로운 귀주공연 묘족처녀 예뻐라.
獨酌茅台吟雅趣 마오타이 獨酌하며 雅趣를 읊는데
殘陽先醉武陵天 夕陽은 武陵의 하늘에서 먼저 취했네.
황과수폭포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아시아 최대 세계 4위의 위상답게 그 웅장하고 시원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곳이 바로 犀牛潭인데 그 서우담으로 폭포물이 깊이 박힌 듯 했다. 귀양으로 돌아와 우리는 ‘多彩貴州風’을 관람하는데 그중 묘족여인의 銀飾이 빼어나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후의를 베풀어준 마오타이공장에 대한 글귀과 귀주의 아름다움을 넣었다. 絶景獨酌은 술맛을 아는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경지이다.
휘호전에 이미 소개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내 옆에서 처음으로 보는 중국작가가 同醉라는 이름으로 시를 써내려가고 있다. 보아하니 그 역시 自吟詩였다. 시를 읽어보니 좋다. 고수는 고수다.
醉園遠客共傾盅 醉園에 遠客들과 함께 잔을 기울이며
仙液拼嘗興未窮 仙液을 마시다보니 흥이 다하지 않더라.
品酒瀰空香氣滿 大境品酒 따르니 향기가 가득한데
鳥飛墜入玉杯中 나는 새들 그림자가 玉杯에 들어오네.
乙未春暮楊霜
이 시는 술로 멀리서 온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입장에서 쓴 것이다. 마오타이의 향기와 맛, 그리고 흥취에 대한 표현이 멋들어지다. 날아가는 새들의 그림자가 술잔에 비쳤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렇게 멀리서 바삐 왔다가 바로 멀리 떠나갈 손님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히 술잔에 넘쳐난다.
다음에 다시 합동작품으로 쓸 기회가 있기에 나 역시 한 수를 써내려갔다. 갑자기 나의 25대조 洪奎선생의 <朴杏山全之宅有題>라는 시가 떠올랐다. 친구였던 행산 박전지의 집에 들러 차를 마시던 정취를 읊었던 것인데, 문득 차와 술을 대표하는 귀주와 시를 아는 귀주작가에게 이글을 소개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杏山을 그대로 쓰면 어색하여 貴州로 바꿔보니 평측에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酒盞常須滿 술잔은 항상 넘쳐야 한다지만
茶甌不用深 찻잔은 넘칠 필요가 없다지요.
貴州終日雨 귀주엔 하루 종일 물 끓는 소리
細細更論心 자세히 우리 다시 이야기하죠.
술을 마실 때면 잔을 채워야 한다고 호기를 부리지만 차를 마실 때에는 그렇지가 않다. 이시는 술과 차, 잔과 사발,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 진한 향기와 그윽한 향기, 혼미해지는 것과 맑아지는 것이 미묘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은 찻물이 끓는 과정을 蝦眼 ․ 蟹眼 ․ 魚目 ․ 湧泉連珠 ․ 騰波鼓浪 ․ 細雨의 단계로 나눈다고 한다. 마지막의 細雨는, 물 온도가 높아지면 가는 비가 내리는 수면처럼 잔잔히 출렁거리는데 이때는 잔잔한 無聲의 물결소리만 나기 때문에 붙여진 단계이다. 단번에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고 취한 김에 말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담담하게 하루 종일 마음속의 이야기를 편안하고 자세히 나누는 분위기다.
좌우간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글을 통해 많이 가까워졌다. 휘호가 끝나자 나에게 자신의 작품과 교환하고 싶다고 한다. 나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녁식사가 마련된 곳으로 들어서니 몇몇 중국작가들이 웅성댄다. 어떤 이가 통역을 해준다. 중국 작가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저녁식사가 시작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楊霜작가가 내게 다가와 “한국에도 한시를 짓는 사람이 있느냐?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술을 권한다. 나는 “한국에 한시를 짓는 사람이 많다.”고 말하며 우리는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그날 나는 필담을 비로소 실감했고, 우리 일행도 같이 밥을 먹다가 양상작가와의 통역하는 과정에 내가 쓴 작품이 자음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이제 그동안 미뤄왔던 중국어회화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