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과 글감/서론광장

[스크랩] 36. 안탑성교서(唐, 褚遂良)

향수산인 2009. 6. 11. 06:38
 

 

36. 雁塔聖敎序(唐, 褚遂良)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를 또한 <자은사성교서(慈恩寺聖敎序)>라고도 하며 당나라 영휘(永徽) 4년(653)에 새겼다.  원석은 두 덩어리로 되어 있다.  하나는 서(序)로 당 태종이 지었고, 다른 하나는 <대당황제술삼장성교기(大唐皇帝述三藏聖敎記)>로 당 고종이 태자였을 때 지은 것으로 글씨는 모두 저수량이 썼다.  두 돌은 별도로 섬서성 서안에 있는 자은사의 대안탑(大雁塔) 남쪽 벽 좌우에 박아 넣었다.  이것들은 벽에 박혀있기 때문에 풍우에 박식되지 않아 지금까지 비교적 완전한 상태로 전해지고 있다.

이 비는 <이궐불감비(伊厥佛龕碑)>보다 20년 뒤에 썼기 때문에 결체나 용필을 막론하고 서풍을 보아도 상당히 차이가 있어 마치 두 사람이 쓴 것 같다.  이치로 볼 때 이 비는 황제가 지은 글이고 장엄한 주제이기 때문에 저수량이 쓴 서체는 초기와 같은 ‘명석지서(銘石之書)’이다.  그러나 저수량은 자신의 서예 이상에 충실하고 서예의 풍운과 성정을 중시했기 때문에 비교적 단정하고 장엄한 ‘명석지서’로 이 비를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천고의 걸작이 탄생되었으니 이는 실제로 창신의 쾌거라 하겠다. 

이전에 이른바 서간(書簡)의 작품과 명석(銘石)의 글씨는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저수량은 이러한 관념을 깨뜨리고 ‘서간’의 작품으로 ‘명석’의 글씨를 대신했고 또한 행서 필법을 해서에 도입하여 아름답고 표일하며 영활하면서 수려한 풍격을 창출했다.  이것이 이 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시대를 긋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보다 1년 전에 쓴 <방현령비(房玄齡碑)>를 비롯한 이 시기에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구양순이나 우세남이 아니라 사릉(史陵)과 궁중에 소장했던 왕희지의 진적들이다.  저수량은 일찍이 성글고 파리한 서풍을 이름을 떨쳤던 사릉에게 글씨를 배운 적이 있었다.  『금석록(金石錄)』에 의하면 “사릉의 글씨를 필법이 정묘하여 구양순과 우세남에게 뒤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성글고 파리한 것은 저수량 만년 서풍의 특징이어서 사릉의 영향을 받은 것이 더욱 분명하다.  정관(貞觀) 12년(638) 이후 저수량은 당 태종의 명을 받고 왕희지의 글씨를 감정해서 『우군서목(右軍書目)』을 편찬했다.  이를 통해 그는 다른 서예가들보다 왕희지의 정수를 더욱 잘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왕희지가 남긴 작품은 대부분 ‘서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마침내 강렬한 필정묵취(筆情墨趣)와 좌우영대(左右映帶)하는 ‘서간’의 풍격과 자신의 성정을 드러낸 무르익은 필치를 ‘명석’에 나타냈다.  게다가 각공의 정미한 솜씨를 거쳤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예술 풍채를 나타내어 당시 서단을 풍미했다.

용필을 보면 비록 가늘기가 실이 노니는 것 같지만 맑고 굳세며 험준하여 마치 철사를 얽은 것처럼 그 힘을 헤아릴 수 없다.  붓끝과 전절은 그 묘를 다하여 봄누에가 실을 뽑는 것 같아 문장과 함께 종횡으로 내달리고 팔면으로 형세를 나타내며 점과 획 사이에서 강정함을 풀지 않는 성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의 굳셈은 곧게 내려 긋지 않고 필획마다 삼과(三過)를 하며 곡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었다.  특히 가로획, 세로획, 가로로 꺾는 갈고리는 때때로 부드럽고 윤택하며 영활하면서 수려한 기를 나타내어 아름답고 여유로운 자태가 있다.  결체는 너그럽고 우아하며 맑고 깨끗하면서 아름다워 마치 거문고의 묘한 운치가 빈숲을 맴돌아 사람의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처럼 강직한 충신과 온화한 문장의 정감을 나타냈다.

충분히 긍정적이고 명랑한 운필은 저수량 서체가 후인에게 깊은 영향을 주면서 가장 계발성이 많은 부분이다.  파리하고 굳센 필획을 보면 제안돈좌(提按頓挫)와 전절의 폭이 매우 크나 모두 법도에 부합하며 붓끝의 세밀한 변화는 명랑함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전절의 동작이 매우 분명하니 이는 많은 공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또한 필세의 개척은 광활한 전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비의 커다란 공헌의 하나이다. 

출처 : 한국서학연구소
글쓴이 : 한국서학연구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