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山途中
北山途中
홍언박(洪彦博, 1309~1363)의 자는 仲容 호는 陽坡 시호는 文正이다. 공의 祖는 南陽府院君 奎이며 父는 三司使 戎으로, 공민왕과 외사촌간이다. 공은 1330년 과거에 급제하여, 1354년 좌정승을 거쳐 1356년 우정승이 되었으며, 端誠亮節輔理安社功臣 칭호를 받고 南陽侯에 봉해졌다. 그해 친원세력인 奇轍일당을 제거한 공으로 1등공신에 책록되고 문하시중에 임명되었다. 1361년 홍건적이 침입하자 왕의 피난을 반대하며 백성과 더불어 개성을 지킬 것을 주장했고, 서경의 군대가 패하자 안동으로 왕을 호종했다. 1363년 金鏞이 일으킨 흥왕사의 난 때 반란군에게 죽음을 당했다. 공은 扈從功臣 1등에 추록되었고, 정승으로 추증되었다. 저서로 〈양파집〉이 있다.
<北山途中>은 문정공이 北山으로 가는 길에 지은 것이나 북산이 어느 곳인지 이 시가 몇 년도에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시의 내용으로 보아 북산은 함경남도 장진군 중남면과 신남면 사이에 있는 높이 2,070m의 산으로 짐작될 뿐이다. 장진군은 지금의 자강도 양강도 사이에 있는 곳으로 蓋馬高原 남쪽지역이다. 개마고원은 자강도 양강도 함경남도 일대에 걸쳐 있으며 해발고도 1,000~2,500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고원지대이다. 북쪽은 완만하고 남쪽은 가파른 경동지괴인데, 이곳에 부전강 수력발전소와 장진강 수력발전소가 있다. 백두산(白頭山)은 태백산(太白山), 장백산(長白山), 백산(白山), 개마산(蓋馬山), 대산(大山) 등등으로 불리어지고 있고, 예전에 개마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백두산으로 했다는 설도 있다. 즉 백두산 옆에 있는 고원이 개마고원이다. 이 개마고원 남쪽 끝자락에 북산이 있다. 시를 살펴보면,
北山途中
千章古木兩山閒(천장고목량산간)
滿壑風煙信馬還(만학풍연신마환)
不是向來名利路(불시향래명리로)
世人那解此淸閑(세인나해차청한)
北山으로 가는 길에
千章의 古木이 들어선 두 산 사이
온 골짜기 風煙 속에 말을 타고 돌아가네.
본래부터 名利를 위한 길이 아니었으니
세인들은 어찌 이 淸閑함을 이해하려나?
이 시의 운은 閒還閑으로 平起式 七言絶句이다. 起句에 보이는 章은 큰 재목이나 재목을 세는 단위를 뜻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千章古木이란 글귀에서 오래 묵어 키가 큰 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북산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兩은 두 마리 말의 어깨부분에 걸어 마차를 끌게 하던 멍에부분에서 의미를 취한 것으로 둘을 똑같이 나눈다는 의미이다. 비슷한 크기의 큰 산이 양편으로 있으니 이곳이 얼마나 외진 곳임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閒은 間과 원래 같은 글자이다. 나무 문틈으로 달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사이가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이 明인데 이는 움집의 좁은 창문으로 밝은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만든 글자이다. 해와 달이 함께 있으니 밝다라는 해석은 옳지 않다. 해가 있을 때 어찌 달빛이 드러나기나 하겠는가? 明에서 日부분은 창문을 상징한데서 변형된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바쁘게 일을 하다 중간중간 쉬는 것을 보고 한가함을 떠올렸던 것 같다. 그래서 閒은 한가할 한으로도 쓰였지만, 후에 間은 사이 간으로 閒은 한가할 한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承句에서 滿은 물이 그릇에 평평하게 가득 차 넘친다는 뜻에서 온 말이고, 壑은 구렁으로 산과 산의 사이에 있는 골짜기를 뜻한다. 風煙은 안개가 바람에 흘러가는 모습이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높은 산이라 모르겠지만 바람에 안개가 떠밀려 산과 골짜기를 흘러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눈앞에 선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信馬는 말을 몰고 가거나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말을 타고 가는데 말이 가는대로 그저 돌아가는 것이다. 옥으로 만든 둥근 고리[環],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圜], 갑옷을 입거나 옷을 내 몸에 두루는 것[擐]과 같은 것을 보면 우측에 있는 부분이 둥근 것 둘러싸는 것을 추측해낼 것이다, 그러니 還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달리다 쉬엄쉬엄 가다라는 뜻의 辵과 함께하니 산기슭을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거나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좌우간 여기서는 문정공이 두메사이에 깊은 숲속 길을 빙글빙글 한가롭게 지나가는 광경이다.
轉句의 向은 집벽에 뚫어놓은 문을 통해 밖으로 향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므로, 向來는 본래부터 여태까지 줄곧 등으로 풀이된다. 名利란 名譽를 상징하는 貴와 利益을 상징하는 富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곳은 개마고원이 있는 깊은 산골이니 거기서 무슨 명예를 구하고 거기에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개마고원에 있는 험준한 길은 중국으로 가는 통로도 아니고 개성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주변에는 나무가 가득하고 산과 바위가 있을 뿐이고 호랑이와 같은 들짐승들이 우글거릴 것이다. 결국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명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요 이곳이 바로 그런 길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니 結句가 더욱 명확하게 들어온다. 세상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러한 淸閑의 삶을 이해할 것인가? 청한은 마음이 맑고 몸이 한가한 것이다. 산골에 있으니 욕심 부릴 것이 없고 욕심이 없으니 마음이 그저 한가하다. 그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 청한함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부귀를 구함이 인지상정이라면 일이 없어 한가함은 가난을 의미하는 것이요 가난한데 마음이 맑은 사람은 安貧樂道를 아는 지극한 경지의 인물이다. 그러니 보통사람에게 한가함은 쉬워도 청한함에 이르러서는 어려운 것이다. 청한의 경지는 욕심있는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문정공의 이력을 가만히ㅣ 들여다보면 그리 한가한 삶이 아니었다. 어려서는 부지런히 공부했고 관직에 나가서는 쉴 새 없이 일을 했다. 고려말이라 나라에는 많은 변고가 일어났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문정공 역시 변란에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결국 이 시는 청한한 삶을 사무치도록 그리워한 문정공이 달콤한 휴식기간에 느꼈던 희열이요, 그 희열을 계속하여 느끼고 싶었던 평소의 바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