遊貴州有感
遊貴州有感
도곡 홍우기
2015년 4월 23일 아침, 필자를 비롯한 권창륜 김영삼 윤점용 이종균 이종선 조동래 최석화 등의 작가와, 한국서단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는 최재천의원, 한중문화우호협회 취환회장, 중앙일보 정재숙기자, 월간서예 최광렬 대표 예술의전당 이동국부장 한국막걸리협회 박성기 회장 등이 茶酒와 書藝를 통한 한중교류차원에서 한국대표단으로 중국 구이저우를 방문하였다. 구이저우는 지형이 험준하여 고립지가 많은 까닭에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주요종족은 먀오족[苗族]·부이족[布依族]·수이족[水族]·둥족[侗族]·이족[彛族] 등이 있으며, 성도(省都)는 구이양[貴陽]이다.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상해푸동공항으로 푸동에서 두어시간 대기한 후 구이저우행비행기에 올랐다. 아침 일찍 한국을 떠났건만 귀양롱동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8시가 넘었다. 바로 貴陽市 南明區에 있는 鉑爾曼酒店으로 가서 구이저우여유국에서 베풀어주는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만찬장을 들어서니 약 삼사십명이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대형회전원탁이 우리를 맞았다. 한국에서 온 손님을 대접한다고 중국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술을 권하는 바람에 우리는 본의 아니게 마오타이를 엄청나게 마셨지만 그 많은 사람에게 술을 권하고 마셨을 테니 우리를 맞이하는 중국사람들도 대단한 호주가이다. 나는 전에 水井坊 董酒 高粱酒 등은 마셔보았으나 마오타이는 이번이 처음이다. 독주가 그렇듯 마시면 금방 취하지만 작은 술잔이었고 취하면서 깨기 때문에 조금씩 마시니 오래도록 많이 마실 수는 있었다. 술이 어느 정도 오르니 다음 귀절이 생각난다.
心懸天地外 마음은 천지 밖에 걸려있고
興在一杯中 흥취는 하나의 잔속에 있네
환영만찬을 끝내고 나에게 배정된 방으로 안내되었다. 2인실이었지만 혼자 쓰도록 배려한 점으로 미루어 우리를 대단히 정중하게 대하는 듯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등이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는 중국의 각성에서 방영하는 다양한 체널이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방영한 드라마도 볼 수가 있었다.
다음날 24일 아침 8시 우리를 실은 버스는 安順市의 陡坡塘瀑布와 黃菓樹瀑布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구이저우는 전체가 국가공원으로 지정될 정도이며, 오랜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고원으로 남서쪽이 올라가는 경사지형을 이루고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한데, 여름에는 하루 종일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 일조량이 적으며 겨울에는 시베리아의 찬 기류를 산맥들이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곳은 차와 밀로 빚은 마오타이주[茅苔酒]와 국제적으로 우수한 술로 평가받고 있는 가오량주[高梁酒]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면적은 176,128㎢요, 인구는 3525만정도 되는 규모이다. 길옆으로 촌락이 보이는데 흰색거물로 단조롭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모두가 1층에서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이층부분이 튀어나왔으며,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기 때문에 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버스를 주차장에 대고 우리는 폭포로 향하는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입구에는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마치 명동거리를 돌아다니는 듯이 인파에 밀려들어갔다. 길가에 붉게 핀 三角梅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陡坡塘瀑布는 서유기의 손오공의 수련동으로 유명한 곳으로 넓이가 105m 높이가 21m의 규모를 자랑한다. 한참을 걸어 폭포에 도착했지만 역시 발 디딜 틈조차 없었으므로 기념사진정도만 찍고 바로 출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황과수는 나이아가라 이과수 빅토리아에 이어 세계4위의 폭포로 두파당폭포아래 1㎞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포이족 아가씨가 깃발을 들고 안내하는데 내려가는 길이니 가는 걸음이 편했다. 가이드의 얘기로 이곳에서만 황과수라는 나무가 자라기 때문에 지명을 황과수라 했고 폭포명 또한 이로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곳이 犀牛潭인데 그 연못에서 물소가 헤엄쳐 나왔다는 전설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장관은 장관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興偉石博園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일정이 급하니 여유있게 주변을 돌아보고 거리에 물건을 구경하지도 못한 채로 모두가 셔틀버스에 올랐다. 어떤 이가 말한다. 이번처럼 돈 한푼 쓰지 못한 여행은 없었다고. 우리는 안순시에서 제공해주는 음식점으로 이동했고 맛나는 음식을 먹었다. 숙소로 이동하는 길은 피곤에 지쳐서 모두가 잠들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정장으로 갈아입고 구이저우 성주를 만나기 위해 오후 4시 30분 버스에 올랐다. 성주가 있는 곳은 그 규모가 굉장했다. 회견장에는 대형 서예작품이 걸려 있었지만 수준은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한국과 구이저우간의 직항로를 개설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얘기들도 있었다. 구이저우성주를 접견하고 우리는 貴陽大劇院에서 공연하는 ‘多彩貴州風’이라는 소수민족공연을 관람했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그들의 땀이 피부로 느껴진다. 박수가 아깝지 않다. 연극이 끝나고 우리는 배우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었다, 묘족은 묘족대로 포의족은 포의족대로 각민족의 복식이 독특하고 화려하다.
鉑爾曼酒店에서 다시 하룻밤을 묵고, 25일 8시 우리는 遵義市로 이동했다. 遵道行義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장개석과의 국공합작이 결렬이 되고 어려움에 처한 모택동이 준의시에서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 동료들과 회의를 했고 그 회의를 기점으로 점차 반전을 이뤄나갔으며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중국전체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 大轉折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기념관에는 당시 중국공산당의 많은 영웅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당시의 생생한 사진들이 당시의 정황을 알려주었다. 풍족했지만 장개석군대는 부패했었고 모든 것이 열악했지만 모택동군대는 청렴했으니 결국 이것이 성공과 패배를 갈랐을 것이다. 우리 한국 역시 많은 문제가 있다. 잘못을 하고도 잘못을 감추고 오히려 다른 사람 핑계를 대며 피해나간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어떤 일을 얽어서라도 끌어내리고 다른 국면을 만들어 피해나간다. 그걸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측은하다. 결국 그 잘못이 고쳐지지 않으니 나라는 점점 부패해가고 국론은 분열되며 밑도 끝도 없는 혼란으로 빠져든다. 개인도 개인이지만 우리 한국도 모택동과 장개석의 일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준의시에서 베풀어주는 점심으로 한끼를 해결했다. 점심을 얼추 마치자 준의시의 공무원으로 보이는 어떤 아가씨가 한국에서 온 대표단을 위해 노래를 한다. 앵콜이 쏟아진다. 노래가 끝나자 한국대표단에서도 답가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무곡선생이 나섰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다.
오후2시 30분 인회시 마오타이에 도착하니 가로등도 청동기 爵으로 되어 있었다. 술로 유명한 고장답게 한 마을 전체가 醉美의 분위기다. 마아타이공장으로 들어서니 많은 이들이 보내온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와 같이 화환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글귀를 적어 길게 걸어놓으니 오래도록 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醉美文化 盛世茅台 香自天成 大境天成 崇本守道라 쓰인 글귀가 들어온다. 기념관으로 들어서니 마오타이가 생기게 된 과정까지를 자세하게 전시하고 있고, 주위에 수없이 걸린 주련들이 눈에 들어온다.
香風溢金盞 향기로운 바람은 금잔에 넘치고
佳釀重茅臺 좋은 술은 마오타이를 중히 여기네
國酒天香 국주 마오타이의 향기로움
香飄萬邦 만방에 향기가 전해지네
마지막 일정은 醉園에서 서로 술에 취하고 취필을 하는 자리였다. 중국대표와 한국대표의 인사말이 있었고 중국서가와 한국서가들의 상견인사가 있었다. 중국의 마오타이를 시음하는 자리도 있었고 한국의 막걸리를 마셔보는 자리도 있었다. 휘호하는 자리는 연못가에 길게 마련되었다. 茶字緣 醉美貴州라는 주제로 치러지는 행사이기 때문에 나는 그간의 일정을 시로 쓰고 싶어 先韻으로 한 수의 시를 썼다.
乙未季春遊貴州有感
神工大瀑揷犀淵 신이 만든 큰 폭포 犀牛潭에 꽂혔고
多彩貴州苗女娟 다채로운 귀주공연 묘족처녀 예뻐라.
獨酌茅台吟雅趣 마오타이 獨酌하며 雅趣를 읊는데
殘陽先醉武陵天 夕陽은 武陵의 하늘에서 먼저 취했네.
먼저 스케일부터 다른 아시아 최대의 폭포 황과수와 서우담을 넣었다. 그리고 저녁때 보았던 다채귀주풍의 연극에서 묘족처녀의 아름다운 은식을 넣었으며, 다음으로 모태주의 좋은 술을 넣었다. 絶景獨酌은 술맛을 아는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경지이다. 사람들도 좋고 아름다운 경치에서 좋은 술을 마시니 여기가 무릉과 같아 석양의 아름다운 하늘을 끝으로 장식했다.
휘호전에 이미 소개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내 옆에서 처음으로 보는 중국작가가 同醉라는 이름으로 시를 써내려가고 있다. 보아하니 그 역시 自吟詩였다. 시를 읽어보니 좋다. 고수는 고수다.
醉園遠客共傾盅 醉園에 遠客들과 함께 잔을 기울이며
仙液拼嘗興未窮 仙液을 마시다보니 흥이 다하지 않더라.
品酒瀰空香氣滿 大境品酒 따르니 향기가 가득한데
鳥飛墜入玉杯中 나는 새들 그림자가 玉杯에 들어오네.
乙未春暮楊霜
이 시는 술로 멀리서 온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입장에서 쓴 것이다. 마오타이의 향기와 맛, 그리고 흥취에 대한 표현이 멋들어지다. 날아가는 새들의 그림자가 술잔에 비쳤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렇게 멀리서 바삐 왔다가 바로 멀리 떠나갈 손님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히 술잔에 넘쳐난다.
다음에 다시 합동작품으로 쓸 기회가 있기에 나 역시 한 수를 써내려갔다. 갑자기 나의 25대조 洪奎선생의 <朴杏山全之宅有題>라는 시가 떠올랐다. 친구였던 행산 박전지의 집에 들러 차를 마시던 정취를 읊었던 것인데, 문득 차와 술을 대표하는 구이저우와 시를 아는 구이저우작가에게 이글을 소개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杏山을 그대로 쓰면 어색하여 貴州로 바꿔보니 평측에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酒盞常須滿 술잔은 항상 넘쳐야 한다지만
茶甌不用深 찻잔은 넘칠 필요가 없다지요.
貴州終日雨 구이저우엔 하루 종일 물 끓는 소리
細細更論心 자세히 우리 다시 이야기하죠.
술을 마실 때면 잔을 채워야 한다고 호기를 부리지만 차를 마실 때에는 그렇지가 않다. 이시는 술과 차, 잔과 사발,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 진한 향기와 그윽한 향기, 혼미해지는 것과 맑아지는 것이 미묘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은 찻물이 끓는 과정을 蝦眼 ․ 蟹眼 ․ 魚目 ․ 湧泉連珠 ․ 騰波鼓浪 ․ 細雨의 단계로 나눈다고 한다. 마지막의 細雨는, 물 온도가 높아지면 가는 비가 내리는 수면처럼 잔잔히 출렁거리는데 이때는 잔잔한 無聲의 물결소리만 나기 때문에 붙여진 단계이다. 단번에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고 취한 김에 말하는 그런 얘기가 아니라 담담하게 하루 종일 마음속의 이야기를 편안하고 자세히 나누는 분위기다.
좌우간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글을 통해 많이 가까워졌다. 휘호가 끝나자 나에게 자신의 작품과 교환하고 싶다고 한다. 나 역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녁식사가 마련된 곳으로 들어서니 몇몇 중국작가들이 웅성댄다. 어떤 이가 통역을 해준다. 중국 작가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저녁식사가 시작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楊霜작가가 내게 다가와 “한국에도 한시를 짓는 사람이 있느냐?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술을 권한다. 나는 “한국에 한시를 짓는 사람이 많다.”고 말하며 우리는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그날 나는 필담을 비로소 실감했고, 우리 일행도 같이 밥을 먹다가 양상작가와의 통역하는 과정에 내가 쓴 작품이 자음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한국행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아침은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5시 30분 인회시를 출발했다. 仁懷市 國酒門溫泉酒店 팬션식 별장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지만, 몇몇은 밤을 새워가며 휘호를 하고 술을 마셨나보다. 몇몇 사람들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귀양 龍洞堡공항으로 이동하는 길에 비가 내린다.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다랭이 밭이 보인다. 지대는 높고 산은 가파르고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니 그 가파른 땅을 일구어 살아가는 중국인들의 척박한 삶이 가까이서 느껴진다. 삼박사일간의 바쁜 일정이었지만 이번은 다른 여행과는 다르게 보고 느낀 것이 많았던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