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麻姑仙壇記(唐, 顔眞卿)
이 작품은 안진경의 나이 62세에 쓴 것이다.
안진경의 고졸하고 순후(淳厚)한 서풍은 <마고선단기>에서 먼저 보인다. 강서성 남성현(南城縣)에서 서남쪽으로 10km 쯤 떨어진 곳에 마고산(麻姑山)이 있다. 정상에는 옛날 단이 있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마고선인(麻姑仙人)이 여기서 도를 얻었다고 한다. 대력(大曆) 6년(771)에 안진경은 갈치천(葛稚川)의 『신선전(神仙傳)』에 의거하여 <마고선단기>를 짓고 써서 나무 위에 새겼는데, 명나라 때 불에 타버렸다. 따라서 전해지는 원탁본은 없고 대신에 대, 중, 소 3종류가 있다. 대자본(大字本)은 글자의 지름이 5cm 전후로 안진경의 원작에서 나왔다. 중자본(中字本)은 단지 『충의당첩(忠義堂帖)』에만 보이며, 후인이 축소하여 임모한 것이다. 소자본(小字本)은 글자의 지름이 0.7cm 전후로 안진경의 정신을 조금도 잃지 않은 뛰어난 것으로 아마도 송나라 때 진무기(陳無己)가 쓴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안진경 해서에서 가장 이름난 것이지만 쟁론도 많다. 구양수(歐陽脩)는 『집고록(集古錄)』에서 “이 작품은 굳세고 긴밀하며 특히 날쌔고 야무지다. 필획의 굵고 가는 것이 모두 법이 있어 볼수록 아름답다.……안진경의 충의는 밝기가 일월과 같고 그 사람됨이 근엄함과 강경함은 마치 그 필획과 같다.”라고 했다. 강유위(康有爲)도 “이 작품은 득의의 필치로 이른바 글씨 밖에서 힘을 내며 능각을 감추었다. 안진경의 여러 해서에서 마땅히 이를 제일로 쳐야 한다.”라고 했다.
용필의 풍격을 보면, 이런 쟁론은 이미 초기의 <다보탑비(多寶塔碑)>, <동방삭화찬(東方朔畵贊)>의 웅장하고 수려한 기풍에서 벗어나 고졸하고 웅장한 것으로 옛날 습성을 일소했음을 알 수 있다. 용필은 장봉을 위주로 하면서 가로획은 평평하고 세로획은 곧으며, 점은 기울어지지 않음이 없고 필세는 온건하며 붓에 먹물을 가득 담아 윤택하니, 이는 이른바 ‘퇴묵성서(堆墨成書)’라는 것이다. 기필과 수필은 고박하고 졸하며 중간은 예스럽고 두텁다. 전서와 예서의 필의를 용해하여 둥글고 너그러우면서 윤택하며 웅장하고 혼후함이 뛰어나 필획마다 착실하고 졸함을 추구함에 조금의 수식도 없다. 글씨의 형세는 서로 향하며 안은 너그럽고 밖은 긴밀하여 마치 강대한 기가 안으로부터 밖으로 향해 팽창하는 것 같다. 특히 주의할 것은 안진경이 이 작품을 쓸 때 매우 강한 모필로 썼기 때문에 날(捺)획의 끝에 삼각형에서 결함된 모양이 나오는데, 이는 실제 의식적으로 조작한 것이 아니라 붓의 성질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 작품의 기식은 가장 고고(高古)하여 안진경 해서의 어려움을 배우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
예술적 심미에서 안진경은 ‘이왕’이래의 연미한 서풍에 대하여 졸한 것을 아름다움으로 삼아 졸한 가운데 자신의 강정(剛正)하고 성실하며 넓고 큰 심경을 펼쳐보였다. 이는 심후한 철학과 미학적 기초와도 일치한다. 춘추말기 노자(老子)의 ‘대교약졸(大巧若拙)’, ‘견소포박(見素抱朴)’이란 설이 줄곧 지극한 이치로 추앙받아왔다. 안진경의 고졸(古拙)은 진, 한의 웅장하고 심후한 풍격과 초서의 웅강한 전절을 그의 해서와 행서에 이식하여 일종의 복고를 실현한 것이다. 이는 옛것을 계승하고 지금 것을 끊는 창조적 행동으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전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심미표준의 전통을 타파하고 굉박정대(宏博正大)한 새로운 표준을 창립했다. 이는 안진경이 서예미학에 대한 새로운 공헌이며, 후인들이 그의 위대함 앞에서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마종곽(馬宗霍)이 『서림조감(書林藻鑑)』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 말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안진경이 나옴에 고법(古法)은 새로운 뜻에 넣어두고, 신법(新法)은 옛날 뜻의 밖에서 나와 만물을 융해하고 여러 장점들을 은근히 포괄했으니, 두보(杜甫)의 시와 한유(韓愈)의 문장과 더불어 모두 똑같이 팔대(八代)의 쇠함을 일으킨 자이다. 이에 비로소 탁월한 당나라의 글씨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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