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과 글감/도곡논단

題鄭府尹山水屛 -도곡 홍우기

향수산인 2016. 8. 26. 01:17



題鄭府尹山水屛

陶谷 洪愚基

 

十月層氷上(시월층빙상)

寒凝竹葉栖(한응죽엽서)

與君寧凍死(여군녕동사)

遮莫五更鷄(차막오경계)

 

시월 층층 얼음 위

차갑게 언 댓잎 자리에서

그대와 차라리 얼어 죽을지언정

오경(五更)이라 닭이여 울지를 마라

 

음력 시월이면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걸쳐있는 초겨울이다. 앞으로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을 거칠 것이니, 시월은 이제부터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임을 암시한다. 같은 추위라도 정월이라면 따뜻해질 기대라도 있으니 가혹하다는 생각이 덜하다. 지금이 시월인데도 층층 얼음이 얼었으니 앞으로 더욱 추워질 것이고 이렇게 밤을 새우다간 언제 얼어 죽을지 모른다. ‘차라리 얼어 죽을지언정이란 말이 절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잔혹한 순간에도 오경이라 닭이여 울지를 마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얼마나 간절하고 얼마나 처절한 시어(詩語)인가? 그 추운 밤을 둘이 지새웠을 텐데, 더구나 함께 있는 곳이 볏짚이나 낙엽이라도 듬뿍 쌓인 따뜻한 곳이 아니라 여름에도 시원한 대숲이니 얼음이 얼고 그 위에 얼어붙은 댓잎이 깔려있는 곳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그런데 사방이 어두워 아무도 볼 수 없고 사방이 추우니 누가 있으리라고 짐작할 리 없는 이곳이 바로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면 정상적인 관계는 분명 아니다. 새벽닭이 울고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보고 알까 무서워 부득불 헤어져야 한다. 남녀는 이 상황이 얼어 죽기보다 싫다. 이는, 내외의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 그것도 집현전 학자로 유명한 사람, 더구나 신미대사와 함께 불교서적 편찬사업에 공이 많았던 김수온의 <술악부사(述樂府辭)>라는 시이다. 아무리 고려가사를 풀어 쓴 것이라고 해도 자신의 문집에 이렇게 절절한 시를 실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본관은 영동(永同)이고, 자는 문량(文良)이며, 호는 괴애(乖崖)식우(拭疣),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아버지는 성종 때 영의정에 추증된 훈()이고 이색(李穡)의 제자인 유방선(柳方善)에게 학문을 배웠다. 세종으로부터 문재(文才)를 인정받아 집현전 학자로 임명되었고, 세종과 세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맏형 신미(信眉)---속명(俗名)은 김수성(金守省)으로, 세종이나 집현전보다는 이 신미대사가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福泉庵)에서 한글을 창제했을 것이라는 설이 제기 되고 있다.---의 영향으로 불교에도 깊은 지식을 가져 치평요람(治平要覽)』 『의방유취(醫方類聚)를 편찬하고, 석가보(釋迦譜)의 증수(增修)에 참여했으며, 복천사기(福泉寺記)」 「도성암기(道成庵記)」 「상원사중창기(上元寺重創記)등 많은 글을 남겼다. 성삼문(成三問)신숙주(申叔舟)이석형(李石亨) 등과 사귀었으며, 명의 사신을 맞아 지은 희청부(喜晴賦)로 인해 그 명성이 널리 퍼져, 명에서는 그를 김희청(金喜晴)이라 불렀다. 하지만 불교사업에 관여한 일 때문에 성종 때는 많은 유신(儒臣)들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저서에 식우집(拭疣集)이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시는 괴애 김수온이 지은 <제정부윤산수병(題鄭府尹山水屛)>중에 여덟 번째 시이다.

描山描水摠如神(묘산묘수총여신)

萬草千花各自春(만초천화각자춘)

畢竟一場皆幻境(필경일장개환경)

誰知君我亦非眞(수지군아역비진)

 

산을 그리고 물을 그림이 모두가 신묘(神妙)하여

온갖 풀과 온갖 꽃이 각자 봄이라

필경엔 한바탕 모두 환상(幻想)이려니

누가 알리 그대와 나도 또한 진실이 아님을

 

이 시는, 제목에서 언급하듯 정부윤의 산수병풍에 쓴 것으로 神春眞을 운()으로 사용하는 평기식 칠언절구이다. 산과 물을 그렸는데 초목이 왕성하게 자라고 아름답게 꽃피운 장면들이 얼마나 실감나게 묘사되었으면 신령이 조화를 부린 듯 신묘하다고 했을까? 작가의 화려한 붓놀림으로 탄생한 병풍이니 순식간에 한 세계가 펼쳐지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 꿈을 꾸다 갑자기 깨어났거나 환상에 젖었다가 홀연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이 그렇지 아니한가?

비슷한 고사가 있다. 호접지몽(胡蝶之夢)이다. 이 이야기는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나온다. “예전에 장주(莊周)가 나비가 되었다. 펄펄 나는 것이 분명한 나비였다. 스스로 마음에 흡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장주 자신인 것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꿈에서 깨어 보니 유연자득(悠然自得)한 것이 장주 자신이었으므로,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꾼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분이 있으니, 이를 물화(物化)라고 한다.[昔者莊周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는 이야기다.

이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또는 인생의 무상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장주와 나비는 분명 별개의 사물이지만, 물아의 구별이 없는 절대 경지에서 보면 장주도 나비도 꿈도 현실도 구분이 없으며, 다만 있는 것은 만물의 변화일 뿐이다. 우리는 상가(喪家)에 갔을 때, 술에 취해 세상을 바라볼 때, 절이나 교회에 갔을 때, 혹은 등산을 하여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때, 몸이 몹시 아팠을 때, 사뭇 다른 시각의 세상을 체험한다. “우리 인생에서 과연 무엇이 중할까? 우리가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왜 그런 조그만 것을 가지고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는가?” 등등을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바로 마음을 비워 초연한 상태가 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대부분은 마음이 다시 달라진다. 그렇다면 전자가 나의 본모습인가? 후자가 나의 본모습인가? 결국은 장주가 꾸었던 호접지몽과 무엇이 다른가?

 

雲有浮沈月晦明(운유부침월회명)

從來未若太虛淸(종래미약태허청)

憑君爲語高遁客(빙군위어고둔객)

莫把陰晴弄一生(막파음청농일생)

 

구름은 부침(浮沈)이 있고 달은 명암(明暗)이 있는데

종래는 허공(虛空)의 맑음만 같지 못하다네.

그대에게 의지해 고고한 은둔자에게 말하노니

음청(陰晴)을 가지고 일생(一生)을 희롱하지 마라

 

이 역시 괴애의 <제고봉운월헌(題高峯雲月軒)>이란 시이다. 우리네 인생이 필경엔 일장춘몽이요 환상과 같은 것이며 그대와 나 모두가 진실한 것이 아니니 이 시에서 보이는 것처럼 부침을 거듭하는 구름과 같고 찼다 기우는 달과 같으며 흐렸다 개인 날과 같다. 어찌 일시적이나 단편적인 사실에 치우쳐 모두를 판단할 수 있나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괴애는 이 시를 쓰면서 나와 불교를 배척한 지가 오래였는데, 하물며 그 말을 인용하여 이를 말하는 것은 어떠할까? 지금 여남의 매자가 나와 알고 지낸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운월헌의 시를 청하므로 뜻을 저버릴 수 없었다. 비록 그러하나 어린아이가 억지로 이해한 일이라고 꾸짖지는 마십시요.[余與釋氏排之久矣 況爲其言而言之乎 今汝南梅子 辱知有年 而求題雲月軒 則意有不可孤焉者矣 雖然母誚其小兒強解事也]”라고 전제한다. 여기서 욕지(辱知)는 자기와 알게 된 것이 상대방에게 욕이 된다는 뜻으로, 상대방에게 자기를 낮추어 가리키는 말이다. 시를 읽어나가다 보면 초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끝으로, 괴애 김수온에 얽힌 일화 두 가지를 소개한다.

 

괴애가 문과에 합격하여 병조 정랑으로 있었다. 하루는 그가 좌랑 김 아무개에게 말했다.

내가 관상을 잘 보네. 자네의 관상을 보니 오래 살 관상일세.”

김좌랑이 기뻐하며 말했다.

자세히 이야기해 주십시오.”

비법을 함부로 전할 수 있나? 술을 한턱 잘 내면 조금은 일러줄 수가 있지.”

기대에 부푼 김 좌랑은 잔치를 차려 병조의 동료들을 초청하고 그 자리에서 괴애에게 다시 청했다.

저의 관상이 오래 살게 생겼다고 했으니, 이제 한 말씀 해주시지요.”

선생은 이미 50년을 살았으니 오래 산 것이오. 선생이 얼마를 더 살지는 내가 어떻게 알겠소.”

이 소리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한다.

 

괴애는 독서를 좋아했고 책을 읽으면 반드시 외웠다고 한다. 그는 남에게 책을 빌려 오면 책장을 떼서 도포 소매에 집어넣고 다니면서 한 장씩 꺼내어 암송하고 혹 잊어버리면 다시 꺼내서 보곤 하였으며 다 외운 뒤에는 모두 버렸다. 그러던 중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가 아끼는 책이 있어 책표지를 다시 만들어 애지중지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괴애의 성화에 못 이겨 그만 빌려주게 되었다. 한 달 쯤 뒤에 보한재가 괴애의 집에 가게 되었는데 보한재는 그 집 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기가 그토록 아끼던 책이 모두 낱장으로 뜯기어 그 집 벽에 붙어 있었다. 신숙주가 어이가 없어 하며 그에게 사연을 물어 보자 김수온은 태연하게 벽에 붙여 놓고 드나들 적마다 읽고 외우면 참 편리하지요.”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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