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명작전/도곡서회

덕천 차준만

향수산인 2021. 11. 18. 06:06

書之妙道 神彩爲上

 

덕천(德川) 차준만(車濬滿)은 서예 서각 그림 음악 등에서 탁월한 역량을 갖춘 작가이다. 그를 생각하면,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지금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늘 빠져 사니 그렇다.

덕천의 젊은 시절만 해도 입대 전에 차트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차트병으로 선발되면 노지초소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경계근무를 서기보다 따뜻한 건물 안에서 행정사무를 볼 수 있었으니 군대생활이 비교적 편했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덕천은 육군본부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안양서예학원에서 차트를 가르쳤고, 그곳에서 부인 하담(荷潭) 윤영자(尹英子)씨를 만났으니, 백파(白坡) 황인호(黃仁好) 선생은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다.

덕천부부가 예산으로 내려온 것은,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는 중년 이후 많은 사람들이 희망하지만 실제 용기를 내지는 못한다. 한동안 도시생활에 젖어 살다가 생활패턴이 많이 다른 시골에 정착하기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역시나 함께 내려왔던 이들이 하나둘 모두 도시로 떠나고 덕천부부만이 덕산에 남았다. 그 후 덕천은 서산의 청석 박봉태 선생을 만나면서부터 서각의 매력에 빠져 살았다. 젊어서 산촌 정순태 선생으로부터 그림을 배운데다 서예를 알고 서각을 했으니 시작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한번 좋아하면 빠져드는 그의 열정은 그를 온전히 서각가로 만들었다. 서각에 색채를 넣는다든가 그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나무문양을 자연스럽게 이용하면서 열중하다 보니 또 다른 차원을 알게 되었다.

서각(書刻)은 글씨를 아름답게 새기는 예술이니, 무엇보다 글씨가 좋아야 한다. 필획에 대한 묘미(妙味)를 알지 못하고 결구와 장법의 진미(眞味)를 느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서각을 한다는 것은, 김치를 먹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논문이나 사진으로만 보고 김치의 맛을 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좋은 글씨를 새기다보면 신명(神明)이 나지만, 맘에 드는 글씨는 구하기가 어렵다. 유명작가의 글씨라도 서각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면 서각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작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글씨를 마음대로 써서 그를 새길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덕천의 내공은 바로 여기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얽매이길 싫어하는 덕천의 성품은 서예 역시 그만의 독특한 서풍을 형성한다. 오랜 세월 글씨를 혼자서 익히면 속서(俗書)에 빠져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기초가 튼튼해서인지 그의 예술적인 바탕이 탁월해서인지 모르지만, 어느 서체를 막론하고 필세(筆勢)가 남달리 강건(强健)하고 거칠다. 연미(姸媚)하기보다는 질박(質朴)하다.

덕천은 일정한 기준에서 작품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글씨나 서각도 그날의 영감(靈感)에 따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자신이 느끼는 바에 따라 달라진다. 덕천은 체본이나 법첩을 모방하기보다는 법첩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나머지는 나만의 생각과 감각에 맡겨 글씨를 쓴다. 덕천은 기분이 내키면 미친 듯이 작품을 하지만 억지로는 붓이나 칼을 잡지 않는다. 덕천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이번에 출품한 서각 중에 서론에 관련한 작품이 있어 사족을 곁들인다.

 

妙道神彩가 으뜸이고, 形質이 그 다음이다. 이를 겸하는 자는 古人을 이을 수 있다. [書之妙道 神彩爲上 形質次之 兼之者 方可紹于古人 - 王僧虔 筆意讚]

 

글씨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형질에만 매달린다. 눈에 보이는 것이 형질이기 때문이다. 기필(起筆) 송필(送筆) 수필(收筆) 선질(線質) 결구(結構) 장법(章法)이나,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초서(行草書)와 같은 형식적인 것 형질에 관련한 것은 반드시 철저하게 익혀야하지만 어디까지나 학서(學書)의 단계에서 집착하고 고민할 사항이다. 고인(古人)들은 이러한 형질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신채(神彩)까지를 생각하고 있다. 신채는 정신(精神)과 풍채(風采)를 의미하니 이는 밖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이다. 눈에는 바로 드러나지 않지만 함께 지내다보면 알게 되고 느끼는 것이다. 사람도 처음에는 외모를 보지만 좀 지나면 그 사람의 인품(人品)과 학양(學養)을 더 크게 느낀다.

이는 소동파의 몽당붓 산 같아도 진귀하지 않고 만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신통해지네.[退筆如山未足珍 讀書萬卷始通神]”라는 문장과 통한다. 추사 역시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몽당붓이 산처럼 쌓였다 하니 얼마나 글씨를 많이 썼겠는가? 서예는 글씨를 많이 쓴다고 좋은 글씨가 되지 않음을 여기서는 역설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동파는 만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신명과 통한다고 한다. 글씨만 써서도 안 되고 책만 읽어서도 안 된다. 이를 겸해야만 비로소 득필(得筆)할 수 있고 고인(古人)과 통할 수 있음을 설파(說破)하고 있다.

준만(濬滿)은 파낸 물길에 물이 가득한 것이다. 물길에 물이 많으려면 수원지(水源池)에 물이 많아야 하고 수로(水路)가 깊고 넓어야 하며 주변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야 한다. 물이 흘러 주변을 적시면 물이 닿는 곳마다 생물들이 생장하니 덕()이란 바로 그렇게 넓고 낮은 곳에 위치할 때 큰 힘을 발휘한다. 덕천(德川)의 글씨나 서각이 풍성한 덕과 세상사를 담아낼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길 바라며 후세에도 손꼽히는 서가(書家) 서각가(書刻家)로 발전하길 빌어마지않는다.

 

신축년 깊어가는 가을 도곡 홍우기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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