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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화유적답사기

향수산인 2010. 5. 5. 07:02

 

 

문화유적답사기

-한국비림박물관, 속리사법주사, 서도탑지공원을 다녀와서-

 

평강 이승길

지난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도 많았기에 여느 때보다 더 따뜻한 봄을 기다려왔지만, 삼사월에도 종종 눈발이 날렸고 영하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지속되었다. 春來不似春! 아마 선인들도 이러한 날을 경험하며 읊은 시구일 것이다. 이번 추위가 특별히 마음에 걸렀던 것은, 한국서도협회 경기지회에서 4월 17일 잡아놓은 문화유적답사에 마음이 쓰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답사는 지난 가을에 예정되었던 것인데 신종플루가 극성하는 바람에 미뤄졌던 행사이다. 실내에서 하는 행사야 그래도 덜 영향을 받겠지만 야외에서 하는 행사는 날씨의 우청(雨晴)에 따라 그 성패가 갈라진다. 따라서 며칠 전부터 주말의 날씨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모이면 자연스럽게 날씨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답사당일에는 날도 풀리고 비가 오지 않는단다. 하늘이 고맙다. 예보가 간혹 틀리기도 한다지만 그런 소식이라도 들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번 답사는 지난번처럼 약 300여명의 규모로 이루어진다. 각지에서 7대의 대형버스와 2대의 봉고가 출발하는 것을 보아도 그 규모가 짐작되고도 남을 것이다. 서실에는 당일 답사참여자에게 나누어줄 36p분량의 ‘답사자료집’과 답사기념품으로 준비한 ‘필산(筆山)’이 차량별로 나뉘어 포장되어 있다. 경기지회 경산사무국장의 치밀함은 그야말로 자타공인이다. 우리 군포지부 역시 승차할 회원들이 먹을 도시락과 과일 음료수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화창한 날씨! 이제는 지긋한 나이라지만 마음은 여전히 소풍가는 날 아이와 같아진다. 길가에는 목련과 개나리가 화려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고, 나뭇가지에는 연두색 고운 잎들이 세상에 가녀린 얼굴을 내민다. 모든 차량들이 오전 10시 30분까지 한국비림박물관으로 모이기로 했기에 우리 군포는 8시 15분경 문화예술회관을 출발하였다. 차안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먹거리들이 오가면서 어느새 활기가 넘친다. 맑은 햇살을 받으며 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2시간 10분만에 비림에 도착했다.

보은군 수한면에 자리하고 있는 비림박물관에 들어서니, 얼핏 보아도 영락없는 초등학교의 모습이다. 연유를 물어보니 예전에 폐교되었던 동정초등학교를, 창포 허유선생이 개보수하여 서예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운동장에는 우리 선인들의 초상화와 글씨가 있고, 담과 벽에는 우리 선인들의 필적들이 걸려있다. 삼국시대의 글씨,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는 고려와 조선시대 선비들의 글씨가 보인다. 현대 서예인들의 글씨를 보아가던 중에, 경제성장의 기반을 다진 박정희 전대통령의 ‘새마을정신‘이란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서예적인 면에서 경지를 말할 수 없지만 획마다 힘이 솟아있고 그분의 맑고 강인한 정신이 배어 있는 것 같아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석각들이 곳곳에 즐비하니, 그 많은 것들을 여기에 다 소개할 수는 없다. 문득 도연명의 ‘음주(飮酒)’라는 시를 보는데 점심시간에 마시게 될 막걸리가 떠올라 침이 꼴깍 삼켜진다.

 

이번 답사를 계기로 문화유적에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의 명적과 서론 및 서예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경기지회장님의 말씀과 회원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서도발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한국서도 공동회장이신 무림선생님과 죽봉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참여자 모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또한 중국 섬서성에 있는 서안비림과 하남 개봉시에 있는 한원비림 등을 보고, 우리도 후손들에게 물려줄 역사적 작품들을 한 곳에서 감상하고 배울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박물관을 세웠다는 허유관장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점심시간이다. 화창한 날씨에 운동장 여기저기에 지부별로 밥상이 차려졌다. 특히나 예산식구들이 많은 음식을 준비해 왔으므로 미처 점심을 준비하지 못한 다른 회원들에게도 풍성한 상이 되었다. 꽃들이 만발한 화창한 날씨에, 아름다운 글씨와 초상화가 걸려있는 비림에서, 그 유명한 공주 사곡막걸리를 앞에 놓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꽃잎처럼 둘러앉으니, 도연명과 이태백이 부럽지 않다.

 

점심 뒤에 우리는 두 번째 답사지인 법주사로 향했다. 속리산이 너무 높아 봄소식이 고개를 넘지 못한 것인지 산이 깊어서 그런지 나무마다 아직 앙상한 모습이다. 법주사에서는, 안면도 송림사 은봉적광대선사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모두가 편하게 답사를 할 수 있었고 자세한 설명도 들을 수가 있었다. 항상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시는 스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도움을 주면서도 내색도 하지 않는 스님에게서 슬그머니 부처의 자비로움이 느껴진다.

 

법주사(法住寺)는, 천축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불경을 싣고 귀국한 의신스님이, 노새에 불경을 싣고 절을 지을 만한 터를 찾았는데, 바로 이곳에서 흰 노새가 발걸음을 멈추고 울부짖더라는 것이다. 의신스님이 걸음을 멈추고 지세를 살펴보니 절을 짓기에 마땅한 곳이라 이곳에 절을 지었다 한다. 따라서 이절은 부처님의 법이 여기에 머물렀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처럼 법주사에는 국보, 보물, 시·도 유형 문화재 등이 사찰중에 제일 많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국보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는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있다. 또한 국보 제64호인 석연지(石蓮池)와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선인들의 솜씨를 감탄하였다. 우리는 두 조로 나뉘어 문화해설사의 전각과 조각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해설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도곡선생이 따로 무리를 이끌어가며 해설을 해주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자주 보았던 평범한 것이지만 해설을 들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각조각 하나하나가 새롭게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동시에 우리가 이렇게 문화재를 보고 감탄하고 즐기는 것처럼 우리 후손들도 이를 즐길 수 있도록 길이길이 잘 보전해야할 책무를 느꼈다.

 

 

법주사에서 많은 것들을 보았고 많은 것들을 들었으며 주차장까지 두 시간을 족히 걸었던 탓인지 몸이 무척 피곤하고 나른하다. 영동 황간까지 가는 동안에는 무거워진 눈꺼풀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긴 시간도 빨리 흐르고 먼 길도 가깝게 느껴진다. 버스로 장장 한 시간의 거리건만 잠시잠깐사이에 버스가 공간이동을 했다.

 

서도탑지공원은 아직 볼거리가 많지 않지만 한국서도협회의 숙원사업이기에 정해진 코스였다. 이곳은 중국의 글씨보다 우리의 명적을 찾고, 우리의 아름다운 글씨를 모아, 이를 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남겨놓자는 큰 뜻을 갖고 만들었다며 무림․죽봉선생님이 힘주어 말씀하신다. 그렇게 우리 선현들의 훌륭한 업적과 좋은 글씨를 돌에 새겨 공원화한다면, 그래서 이를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둘러보게 한다면, 여기는 우리 한국의 얼이 모여든 큰 교육장이 될 것이다. 탑지공원에는 소암탑, 백두필, 한라연이 있고, 고구려 광개토왕비로 집자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설화, 백제 무령왕릉지석으로 집자한 서동요, 통일신라시대 김생의 조계묘비로 집자된 처용가의 위용이 당당하다. 이를 집자한 경기지회장인 도곡 홍우기 선생님의 노력과 집념도 함께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서예인들의 마음이 간절하다면 꿈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기념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출발지로 버스를 돌렸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는 지치지도 않았는지 담소와 노래자랑이 한창이다. 모두가 오늘을 계기로 서로를 많이 알게 되었고 더욱 친해졌다. 다시 만나자는 인사에 오늘 만나서 반가웠던 마음과 헤어지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리고 큰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동안 알게 모르게 했을 고생을 떠올렸다. 편하려면 얼마든지 편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선비정신을 살려내고 아름다운 서예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사방에 꽃이 피는 요맘때쯤이면 주변에 대소사도 많은 법인데 만사 젖혀놓고 기꺼이 참여해준 그 많은 사람들도 고맙다.

출처 : 묵향마을
글쓴이 : 아리랑(연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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