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갤러리/캘리실용

[스크랩] 우국제 홍경선선생시비

향수산인 2011. 9. 3.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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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막식을 한 이후에 대작에 모습

글을 각자하는 시간이 약20일이 소요됬다.

1일 9시간 기준

 

 

 

 

 

입석을 마친후에 청소까지 완료된 홍경선선생시비  

 

 

 

 

 

 

입석을 한후 옆에 시멘트를 채우고 있다.

 

 

 

 

 

 

잔듸를 심고있는 현대조경부사장님과 그의 직원들

 

 

 

 

 

 

주변의 조경정리

 

 

 

 

무엇을 할까

 

 

 

 

뒷정리

 

 

 

 

 

글씨를 복사해서 돌에 붙이기전 모습

 

 

 

도곡 홍우기쓰고,

반석 김일환각자하고,

비림박물관 기획및 연출하다.

 

 

 

 

 

 

 

우국재선생시비건립기(友菊齋先生詩碑建立記)

 

홍경손(洪敬孫; 1409-1481)선생의 본관은 남양(南陽)이고, 자는 길보(吉甫)이며, 호는 우국재(友菊齋)로, 수원부사 첨지중추부사 동지성균관사를 지내셨습니다. 선생은 조선초의 석학으로 칭송되었으나 고려왕조의 외손이란 굴레 때문에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전국 명승지를 유랑하며 자연을 노래한 주옥같은 시가를 많이 남기셨고 『충음시고(蟲吟詩稿)』·『우국재집(友菊齋集)』에 전해져 세인의 심금(心襟)을 울렸다고 전합니다.

 이 ‘과강릉진부역(過江陵珍富驛)’은 1451년 우국재선생이 강릉도호부로 출장가시

다가 지으신 시입니다. 이후 석벽(石壁) 홍춘경(洪春卿; 1497-1548, 황해도관찰사)

선생이 역사에 걸린 증조부의 시를 보고 차운하여 2수를 지었고, 치암(癡巖) 홍춘년(洪春年; 1504-1574, 강원도관찰사)선생도 두분의 시에 화답하여 2수의 차운시

를 남겼습니다. 현손인 율정(栗亭) 홍천민(洪天民; 1526-1574, 도승지)선생 역시 역사에 게시된 다섯 수를 보고 차운시를 읊었으니 이는 참으로 뜻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과강릉진부역’에는 높은 산과 맑은 물에 둘러싸인 진부역처럼 이 나라에 충신들이 가득하니 나라를 어지럽히는 간신배들은 맑은 바람에 산구름이 몰려가듯 속히 사라질 것이라는 우국충정이 담겨있습니다. 이에 증손과 고손이 화답하였으니, 조손 3대 120여년간의 충효사상은 개인주의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크게 선양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국재선생 탄신 600주년을 기념하여 이와 같이 시비를 건립하는 바입니다.

 

 서기 2009년 10월 18일

 

南陽洪氏友菊齋先生詩碑建立委員長 洪淳範 謹建

 

고        문     홍재억

명예위원장    홍일식

집행부위원장 홍당표

섭외부위원장 홍성로

후원회장       홍순량

총     무        홍민기

감     사        홍성우 홍성하

 

 

출처 : 한국비림박물관
글쓴이 : 창포 허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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