允執厥中 洪在仁
“좋아하는 문구요? 윤집궐중(允執厥中) 절문근사(切問近思)지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보통 사람들은 좋아하는 문구나 좌우명을 질문하면 머뭇거린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즉석에서 분명한 답이 돌아오니 당황한 것은 오히려 취재하는 쪽이었다. 절호의 기회다. 요것은 못 받아치겠지 하면서 전력을 다해 공격을 했는데 매섭게 되받아친 반격에 꼼짝없이 허를 찔린 바로 그 모습이랄까? 잠깐 멍하니 “바로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있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요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배우고, 긍재 윤열상선생님께 한시(漢詩)를 배우고 있는데 너무나 행복해요.”
이건 확인사살이다. “뭐라고? 회갑이 한창 지난 나이에 『심경』과 『근사록』을 배운다고?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아니 그 어려운 걸 배우는데 행복하다고?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생각에 잠시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윤집궐중(允執厥中)이란,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 당부했던, “인심(人心)은 위태(危殆)하고, 도심(道心)은 은미(隱微)하니, 오직 정명(精明)하게 하고 오직 순일(純一)하게 해서 진실로 그 중심(中心)을 잡으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는 말이다. 인심이란 신체적 기운에서 나타나니 부도덕한 곳으로 흐를 위험성이 높고, 도심이란 선천적 본성에서 우러나오니 순수하지만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정명(精明)’하면 인심과 도심의 사이를 살펴서 섞이지 않고, ‘순일(純一)’하면 그 본심의 올바름을 지켜서 이로부터 떠나지 않으리니, 윤집궐중이란 늘 그 ‘中’을 잡아서 올 곧게 살고 싶다는 절절한 표현이다.
절문근사(切問近思)는 자하(子夏)의 말로, 널리 배우고 뜻을 독실하게 하며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한다면 인(仁)이 그 속에 있다.[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는 뜻이다. 만약 배움이 넓지 않으면 예를 지키고 단속하기가 어려우며 뜻이 독실하지 않으면 힘써 실천할 수 없다. 건성으로 물어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간절하게 물어 확실한 답을 구하니 명확한 대답을 얻을 수가 있다. 멀리 있어 모호한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확실한 것부터 생각한다면 올바르게 사는 방법이 바로 그 안에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는 진정으로 바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진심으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닌가?
시묵헌 홍재인은 경기도 양주군 남면에서 태어나 자랐다. 남양홍씨는 고구려 영류왕 때 중국의 홍천하(洪天河, 선시조)가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상안리 당성(唐城)에 정착하면서 대를 이어온 성씨이다. 그 후 10대를 내려와 고려초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삼았고 16세 홍지(洪智)가 죽자 이태조가 남면 상수리 일대에 큰 땅을 하사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남양홍씨의 중요한 세장지(世葬地)가 되고 있다. 시묵헌은 바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랐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조부를 위해 먹을 갈고 조부에게 천자문을 배웠으니 보학(譜學)과 한문(漢文)에 대한 관심이 지극했을 것이다. 게다가 면장을 지낸 부친이 면내 초상이 날 때마다 만장을 쓰는 모습을 보아 왔으니 그 인생의 발걸음은 자연 서예로 향했으리라. 큰언니는 수필가로 등단했으며 작은언니는 동화작가로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인데다가 오빠도 시인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시묵헌의 마음속에는 이미 문학에 대한 매력도 뿌리칠 수 없는 존재였다.
시묵헌은 면사무소에서 근무를 하다가 거기서 학교선배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대부분이 그렇듯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아이들을 키워야 하니,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아무리 강해도 내 뜻대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묵헌이 서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이들이 성장하고부터였다. 운촌 유동준을 만나 글씨를 배우면서 한국서도협회 초대작가ㆍ국제서법예술연합 초대작가 등이 되었고, 대한민국서도대전 심사위원ㆍ구리문화원 이사로 활동하면서 구리서예원을 30년간 운영하고 있다. 호는 목여당(木如堂)ㆍ시묵헌(詩墨軒)ㆍ동산 등을 쓴다. 그림은 주봉 공영석에게 배웠으며, 김지연 소설가와 함동선 시인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공부를 하였다. 시문학 신인 우수상으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회원ㆍ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ㆍ시문학문인회ㆍ글핀샘문학회ㆍ산목회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늘 연습 중』ㆍ『너는 어디에 있는가』가 있다. 이를 보면 시묵헌이 얼마나 배움에 공을 들였는지 알 수가 있다. 시묵헌의 삶을 듣고 있자니 우리 서가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한글서예를 하든 한문서예를 하든 우리는 글씨를 쓰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서예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이나 자신만의 글씨를 쓰지 않는다. 한문서예를 하는 작가들은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의 글을 쓰고 장맹룡비 집자성교서 쟁좌위고 등의 글씨를 쓴다. 한글서예를 하는 작가들도 옥원듕회연 낙셩비룡 농가월령가 등의 글씨를 쓰고 이해인 용혜원 김소월 등의 시를 쓴다. 궁체를 찬양하는 것도 좋지만 현실에 맞게 다양한 글씨체가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글도 좋지만 나의 생각 나의 글도 필요한 것인데 심지어는 한글작품이건 한문작품이건 내가 쓴 작품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우리 서예인의 현주소는 무엇인가? 바로 글씨만을 따라 쓰는 사람들이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서예ㆍ서예이론ㆍ서예사ㆍ한문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고, 다만 스승이 써준 체본을 따라 무조건 임서만을 할 뿐이다. 그렇게 해서 초대작가가 되었으니 혼자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심사기술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자가 있어도 상관없고 좋지 않은 작품이라도 모두가 좋은 점수를 주도록 하여 대상을 만들어내니 노련한 심사기술자들이 아닌가? 이는 돈에 매수가 되어 승부를 조작하는 놈들이나 부정한 돈을 말끔하게 세탁하는 지하세계 조직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잘 가르쳐서 좋은 작가를 양성하려는 것이 스승의 지향점이 아니요, 좋은 작품 좋은 작가를 선발하는 것이 공모전의 뜻이 아니라면 우리 서단은 이미 심각한 불치병에 걸려있는 상태이다. 어찌 서여기인(書如其人)을 말하는 이들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잠시 시묵헌의 시 한수를 소개한다.
길 위에서 -캄보디아
메콩강 황토 진흙물에 젖은
아이와 어미의 눈빛
원 달러 원 달러 목이 쉬는 강
바람처럼 왔다 가는 걸
다 알면서도
여행자를 해처럼 또 기다리는
생존의 갈퀴
긴 강 위에 놔두고 온 그 눈빛
오늘도 흙물에 젖은 채 떠다닌다.
시묵헌은 자신의 글을 쓰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으로 행복해 하는 사람이다. 학문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고 글을 통해 이처럼 냉철하게 현실을 고발한다. 틈만 나면 양재를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도예나 목공도 배워보고 싶단다. 궁금한 게 많으니 배움에 대한 욕심이 많다. 시묵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여 시와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늘 함께할 수 있고 언제나 즐길 뿐 지루해하지 않으니 시서화(詩書畵) 이것이야 말로 시묵헌에게는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同伴者)다.
시묵헌에게 서예를 하면서 아쉬운 점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개인적인 대답 대신 서단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요즘은 서실에서 노년층만 공부하지 젊은 학생 어린아이들이 없어요. 이는 서단에 미래가 없다는 의미잖아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애들이 몇 명씩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조차도 없어요. 아이들의 인성교육ㆍ지구력ㆍ인내심 등을 키우는데 서예가 얼마나 좋은데 사람들은 왜 이를 외면할까요? 저는 손주가 생기면 서예를 꼭 시키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관내 몇몇 중학교에서 서예강사를 하며 놀라운 점을 많이 발견했어요. 한 달에 한 번하는 수업인데도 1년 후엔 그렇게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데 교육부에서는 서예를 왜 정규과목에 넣지 못할까요?” 아쉬움과 바람이 대답 속에 진하게 묻어난다.
시묵헌은 내년 봄에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회갑전을 준비하다가 부족한 것이 있어 미룬 것이 벌써 5년이란다. 많은 작품을 완성해 놓았으며 세 번째 시집도 함께 출판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경기가 최악인데 왜 굳이 지금 하려고 해요?”고 했더니 “구리에서 작게 하니 부담도 크지 않지만 공부를 위해 준비하는데 경제가 좋고 나쁨이 무슨 상관이죠?”라고 되묻는다. 그래 맞다. 어찌 우리가 언제 돈을 생각하고 글씨를 써왔든가? 그냥 글씨가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것인데. 조언을 해준다고 말을 꺼낸 필자의 마음이 속인(俗人)의 심정이다. 시묵헌은 이처럼 ‘호학인(好學人)’이다. 마지막으로 홍재인의 시 한수를 소개한다. 만사와 같은 글귀가 가슴을 후벼 판다.
길위에서 (3)
ㅡ지하철 구의역 2016·5·18 이별ㅡ
푸르던 꿈은 어쩌고
젊은이여 천지간이 봄인데
꽃잎처럼 떠나시는가?
그처럼 허망히 떠난 그 자리
남은 자들이 올린 흰 국화가
슬픔으로 하얗게 시들고 있다오.
우린 여기 남아 어제처럼
학교로 일터로 집으로
그 지하철 타고 내린다네.
바람처럼
많은 사람 찾아와 슬픔을
꽃과 편지글로 배웅을 한다오.
"미안해요 못 지켜줘서
못다한 꿈 그 곳에서 꼭 이루어요.
슬프다 정말 슬프다
새가 되어 훨훨 자유로이 날아다녀요.
하늘나라에선 제 때 식사해요"
2인 1조 거짓말 또 거짓말
19살 청년 가방 속엔
주인 잃은 푸른 공구들
모자라던 시간이 정지된 아픔과
때를 놓친 컵라면 한 개.
먹먹한 이 세상
우린 또 성냥갑 같은 집으로
어둑 어둑 다리를 끌고 와
식탁에 앉아 때에 밥을 먹는
아 부끄러운 허공이여
그래! 우리 이런 작품을 글로 쓰는 거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처럼 글씨는 조금 못 쓰더라도 뱃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있어야 진정한 서예인이요 진정한 선비가 아닌가? 우리가 청렴하고 공정해야 서단도 그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공부하고 연구해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드러나야 서예계도 흥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시묵헌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서예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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