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자가 꿈을 이룬다
-심전 선우순선・청연 구경자・도솔 박정숙 전에 부쳐-
지난 10월 백악미술관에서는 鮮于順仙・具敬子・朴貞淑의 서예전이 있었다. 이 전시는 2010년 경기지회에서 주최했던 ‘四人四色展’ 후속으로 기획된 것이다. 당시 ‘사인사색전’에 참여하였던 작가는 君松 權炳祐・時雨 朴鍾賢・杏村 安果淳・美堂 李必淑이었다. 군송은 문학적 소양과 한문필획을 가미하여 독특하고 힘찬 한글서예를 펼쳤고, 시우는 탄탄한 한학실력과 다양한 서체를 무기로 한문서예를 선보였다. 행촌은 풍부한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대범하고 깊이 있는 한문을 보여주었고, 미당은 석사학위논문을 쓰는 중에도 한글・한문・국한혼서를 다채롭게 구사하였다. 이렇게 성향을 달리하는 네 사람이 함께 모여 붙인 이름이 ‘四人四色展’이다. 많은 세월 정진하여 초대작가가 되었더라도, 강호의 대가들이 오가는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작품 수십 점을 펼쳐 보임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첫 전시는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 접근하는 방식이 편할 듯하여 경기지회 차원에서 네 사람을 묶어 전시를 기획했던 것이다. 아무튼 첫 번째 사인사색전의 결과는 아주 흡족하였다.
이번에 深田 鮮于順仙은 계사년 華甲을 맞아 자신의 서예인생을 반추하는 개인전을 구상했고, 靑硯 具敬子와 도솔 朴貞淑은 새로운 서예지평으로의 도약을 위해 전시를 준비했다.
심전은 38년이란 긴긴 세월 서예를 전공한 작가이다. 이번 전시작을 둘러보면, 전서와 예서가 주류를 이루고 행초가 그 다음이며 해서와 한글이 함께 전시장에 펼쳐지고 있다. 내용면으로 보면, 中國詩賦・韓國漢詩・名言佳句・聖經句節・書刻・書論・般若心經 등이 등장한다. 심전은 이를 준비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짐작되며, 그중에 <司空圖二十四詩品>은 대단히 공을 들인 작품임이 분명하다.
서예는 임서를 통해 古人의 경지를 들여다보고 그로써 나의 예술적인 감흥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적으로 고인의 글씨만 모방하다보면 작가의 精神과 氣風이 스며들 수 없다. 오로지 遒勁한 필획에 치중하더라도 俗氣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글씨는, 외모만이 어여쁠 뿐 가슴과 머릿속에는 든 것이 없기에 감추려고 해도 천박한 언행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글씨에 저절로 속기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익숙하게 연습하고 서법에 정통하며 손과 마음이 서로 호응하도록 함은 물론, 훌륭한 인품과 풍성한 학식을 갖추어야 좋은 글씨를 쓸 수 있음을 심전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인지 심전의 글씨를 보면 모든 획이 가볍지 않다. 행초 역시 장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虛尖한 필획이 적다. 많은 생각을 하고 절제하는 분위기다. 다만 강하고 예리한 필획에는 주변 공간을 많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字間이나 行間이 좁으면 같은 작품일지라도 거칠고 어수선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심전은 문단에도 등단한 작가이기에 그 시문을 빼놓을 수 없다. 다음은 심전이 초대작가가 되고 나서 지은 <讚文房四友>의 일부이다.
沈黙 하나로만 初志一貫 墨香
너의 빛깔은 비롯됨에서 멈춤에까지
하나이면서도 다양한 雄辯
나의 언어도 그대 속에 잠긴다.
청연 구경자의 작품은 금문・소전・팔분・해서가 주류를 이루고 행초・한글・갑골문・고예가 함께 전시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도록에 곁들인 사진이 작품을 설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잘 어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게 뭐지? …………”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그 사진이 시들어 꺾인 연잎・연밥・연줄기가 맑은 물에 반영된 것임을 알게 된다. 18년을 정진하고서야 비로소 벙글어지는 아름다운 꽃을 이렇게 표현했을까? 아무리 세상에서 버려지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도 아름다운 감흥으로 예술적인 승화를 거치면 이렇게 빼어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반증일까? 청연의 글씨는 가늘고 강하며 端雅하다. <眠雲聽泉> 옆으로는 새벽안개에 오리 몇 마리가 유구천과 함께 흐른다. 유구천 안개 속에서 잠이 들고 그 속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선경을 경험한다는 뜻인가? 마음이 편하고 즐거우면 바로 그곳이 仙界일 테니 신선이 어디 따로 있으랴?
글씨를 쓸 때, 어떤 곳에서는 바람조차 스며들 조그만 틈조차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요, 어떤 곳에서는 말을 타고 달릴만한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奇는 正에서 이어지고 正은 奇에서 연결되니, 같은 글자라도 때에 따라서 크고 작고 굵고 가늘고 기울어지는 변화가 따라야 함을 청연은 숙지하고 있을 것이다. 말해주고 싶은 것은, 특정한 서풍에만 빠져있으면 예술적인 경지를 이루었더라도 奴書로 취급당할 테니, 이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의 서론을 보고 더 많은 법첩을 탐구하며 衆人의 장점을 나의 예술세계로 녹아들게 하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도솔 박정숙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기법들이 돋보인다. 작품은 고체와 궁체가 주를 이루고 문인화・서각・부채・스카프 등이 전시장에 어우러지고 있다. 도솔의 작품을 둘러보다 문득 <행복>이라는 글에 눈길이 머물렀다. 불이 꺼진 燈에 같은 흰색으로 돌출된 글씨들이 있는데 불을 켜면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런 작품이었다. 내안에 불이 켜졌을 때 비로소 타인을 향해 드러내는 글귀.
“이 세상에 당신이 있어 내가 행복한 것처럼 당신에게 나도 행복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서예에 입문한 이래 26년간 도솔은 서예와 대화를 했을 것이다. 때론 붓을 꺾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불쾌한 날도 있었을 것이요, 때론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뻤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도솔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고서야 비로소 인사동에 法燈을 밝히는 도솔의 심정은 또 어떨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얼마나 깊은 정성을 쏟았을까? 그래서인지 도솔의 작품에서는 애써 변화를 시도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베에 글씨를 쓰기도 하고, 염색지나 각종 문양지에 작품을 하기도 하였으며, 천연 염색을 한 스카프와 부채・와당문・난초・경계선 등이 작품에 등장한다. 작품의 行列에서도 嵾嵯한 변화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지금의 현실에 안주할 수 없기에 이러한 몸짓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이는 분명 더 높은 경지를 향한 강렬한 외침이다. 하지만, 『중용』에 “隱密한 것보다 더 보이는 것이 없으며 微小한 것보다 더 나타나는 것이 없다.[莫見乎隱 莫顯乎微]”라는 말을 기억해 두었으면 좋겠다. 나의 마음이 간절할수록 더 참아두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을수록 오히려 감춤으로써 더욱 밝게 보이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치를 안다면, 그리고 좀 더 遒勁한 필획을 구사할 수 있다면 도솔은 한층 성장할 것이다.
“입은 반드시 소리를 잊은 다음에라야 능히 말을 할 수 있으며 손은 반드시 붓을 잊은 다음에라야 능히 글씨를 쓸 수 있다.[口必至於忘聲而後能言 手必至於忘筆而後能書]”
이는 蘇東坡의 말이다. 입모양을 어떻게 하고 혀를 어떻게 놀려야 어떠한 음이 나온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다보면 말을 이어갈 수가 없다. 그러한 것을 모두 뛰어넘어 그 주제만을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손이 붓을 잊은 다음에라야 달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고, 神技에 가까운 글씨를 쓸 수가 있다. 轉折・提按・粗細・頓挫・方圓・長短・黑白을 하나하나 생각한다면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이러한 수준으로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기금이 많다고 좋은 협회가 아니요 출품수가 많다고 좋은 공모전이 아니다. 발전가능성이 있고 뛰어난 작가가 많은 협회가 좋은 협회요, 그런 사람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협회가 좋은 협회이다. 수준급 작가가 많이 응모하는 공모전이 좋은 공모전이요, 채점을 하던 합의를 하던 좋은 작품이 수상작에 오르고 수준이하의 작품이 낙선되는 공모전이 좋은 공모전이다. 협회는 일부의 이익을 위해 작가들을 위압하는 존재가 아니라 훌륭한 작가를 키워내고 한국서예의 발전을 위해 큰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에 와서 관람하였기에 겨를이 없어 점심을 굶을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전시 후에 달리 대해주는 주변사람들을 보고 한편으로 놀랐고 한편으론 뿌듯했다는 말도 들린다. “어느 협회 소속인데 이렇게 작품이 좋으냐?” “서도협회 경기지회가 그렇게 활성화 되었느냐?”는 말들도 전해온다. 이들은 한국서단의 큰 자산이다. 2010년 전시를 하였던 4인이나 이번 전시에 참여하였던 3인의 작가 모두 용맹정진하고 건강하여 한국서단의 중심축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임진년 겨울로 들어서는 근사재에서 도곡 홍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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