超物累 樂天機
- 茂谷 崔錫和 從心展에 부쳐 -
지난해 봄, 무곡서예동문과 도곡서회는 무곡최석화고희전과 각각의 회원전을 함께 치르는데 마음을 모았다. 작가는 무곡서예동문과는 사제지간이고 도곡서회 회원들에게도 서도협회 경기지회를 통해 친근해진 書家였기 때문에 이견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전시를 한다면 일반적인 名言名句나 名詩보다는 祝壽祝福으로 주제를 맞춰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여 무곡서예동문은 中國의 祝壽聯句로 작품전을 펼쳤고, 도곡서회는 조선의 선비들이 지었던 獻壽詩를 골라 전시를 열었다. 고희전도 醉墨軒 印永宣의 祝辭와 題字에 요즘은 나이가 칠십이라도 한창이기 때문에 고희라 부르기보다 從心所欲不踰矩를 의미하는 從心이 좋겠다 하여 종심전이라 한 것이다.
평생 붓을 잡아왔던 書家의 종심전에 삶의 고락을 나누었던 주변사람들이 축필을 들어 함께 축복해 준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전시장에서는 작가의 칠순을 축하하는 분위기로 장엄되지만, 전시가 끝나 집에 걸어놓으면 바로 부모님의 장수를 빌고 형제자매의 건강을 기원하는 작품이 되니 이 또한 소중하지 아니한가? 여기에 축필 18점이 있었는데 그중 46년과 58년 개띠 유명서가들이 보내준 14점은 ‘群吠振天’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전시되었다. 群吠振天은 개 한 마리가 짖으니 동네 모든 개들이 천지가 진동하도록 짖어댄다는 뜻으로 인사동이란 한국문화중심지에서 한바탕 개판을 벌여보고 싶은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니 이번 종심전은 그야말로 격조 높은 칠순잔치가 된 셈이다. 이처럼 서예인들이 기쁘거나 슬픈 일을 당했을 때 협회・서파・나이를 초월하여 서로 글로써 축하해주는 분위기가 성숙된다면 우리 한국서단도 흥성할 것이요 한국의 서예문화도 크게 발전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곡은 원곡 김기승과 무림 김영기로부터 서예를 사사했고, 계정 민이식으로부터 문인화를 익혔으며, 원광대 대학원에서 書論과 篆刻을 공부한 실력파 작가이다. 어느 누구든 혼자의 힘으로 書畵의 높고 깊은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 좋은 법첩을 통해 글씨를 익히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 바른 필법을 익히더라도 得筆은 어려운데 하물며 혼자서 공부하여 수승한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꿈조차 어렵다. 그러니 좋은 스승을 만난 것이 무곡의 오늘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다시 그의 글씨를 보면 어느 누가 보더라도 원곡으로부터 나왔음을 짐작할 수 없다.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밤하늘의 별과같이 많은 서가들이 明滅해왔지만 스승의 글씨체를 벗어나 일가를 이룬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혹여 스승에게 미치지 못했더라도 자신의 서풍을 이룬 사람이라면 높이 평가할 수 있으리니 그만큼 자신만의 서풍을 이뤄나간다는 것은 어렵고도 어렵다.
종심전에는 金文・隸書・行草・한글 등 60여점의 서예작품이 보이고, 松鶴・梅花・菊花・墨竹・墨蘭・갈대・연꽃・山 등 20여점의 문인화가 보였다. 병풍은 7점정도가 있었는데 백납병・행초・난초・한글・문인화・금문・예서 등으로 쓰인 것이다.
이번에 출품된 어떤 작품을 보면 어느 서체로 넣어야 할지 난감한 것들도 있다. 金文에 隸書가 어우러지고 다시 行草가 흐른다. 정문공비풍에 미불풍의 행초서가 쓰이기도 하고, 목간의 필법에 금문이 다시 등장한다. 서체를 넘나들고 서풍이 서로 뒤섞이지만 필획과 필획 글자와 글자의 어울림은 참으로 자연스럽다. 그러니 배움은 익숙하지 아니할 수 없으며 익숙해지면 변화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변화한 뒤에라야 自家의 면목이 있게 된다.[學不可不熟, 熟不可不化, 化而後有自家之面目.-方薰]는 말이 저절로 떠오를 수밖에. 이는 오랜 세월 고전을 천착하고 다양한 글씨를 익숙하도록 쓰고 난 후에 저절로 체득한 경지일 것이다.
누군가 우스갯소릴 한다. “10대에 하는 화장은 단장이고, 20대에 하면 치장, 30대는 분장, 40대에는 변장, 50대에 화장을 하면 위장, 60대의 화장은 포장, 70대는 환장, 80대는 끝장이란다. 하하하.” 순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새겨보니 그냥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나름 일리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화장법은 무엇인가? 첫째는 사랑하고 배려하는 고운 마음이다. 마음을 곱게 쓰면 얼굴에 밝고 온화한 기색이 돈다.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둘째는 풍부한 지식과 뛰어난 재능을 갖는 것이다. 노래를 잘한다든가 지적인 면을 발견했을 때 같은 사람이라도 달라 보인다. 이처럼 내면으로부터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어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셋째,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여 피부가 건강한 것이다. 피부가 고우니 아름다울 것이요, 몸이 건강하니 마음이 두루 편안할 것이다. 넷째는, 운동으로 탄력있는 몸을 유지하는 것이다.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은 사람은 트레이닝복만 입어도 예쁜데, 어찌 겉으로 꾸민 모습과 비교가 되랴? 가장 마지막 단계가 얼굴에 바르는 것이요 예쁜 옷을 입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적당해야 아름답다. 가리고 숨겨야 하는 것이 많아지고 그 정도가 심해질수록 변장 위장 포장 끝장의 단계를 밟아가니, 결국 이 말은 그 지나친 점을 꼬집은 것이리라.
무곡의 글씨는 아이처럼 맑고 순수하다. 고희의 나이에도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감동할 줄 알고 행복해한다. 바위표면이 울퉁불퉁한 대로 소나무 줄기가 구불구불한 대로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깊어가는 주름마저도 감추지 않으니 거기서 오히려 무곡다운 멋이 살아난다. 꾸미려는 마음이 없으니 그의 글을 보면 시원시원하고 그림은 편안하고 아름답다. 사실 글씨를 쓰다보면 붓이 먹을 머금고 있는 상태도 다르고 먹의 농도 역시 다르며, 그때그때 작가의 기분도 달라진다. 이에 따라 작품도 달라지니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것이 서화의 기본요 그 끝이라 할 것이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그 욕심이 붓으로 흐를 것이다. 욕심이 지면에 드러나 글씨가 천박해지고 생각과 뜻이 淸高하지 못해 좋은 글씨를 쓸 수 없으니 사람들은 갖가지 기교를 동원해 좋은 글씨처럼 꾸미기는 하나 이는 오히려 추하게 변장이나 위장의 단계로 나아간다.
무곡의 생각은 이미 자연인이다. 작품은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작가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서초동이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촌에서 글씨를 쓰면서도 초라하고 한적한 시골집이 늘 그리운가보다. 작품을 보면 그의 생각이 끊임없이 고향산천으로 달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을 아름답게 보고 자연속에서 동화되어 담박하게 살아가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이 그 이유이다. 讀山海經 歸去來辭 和歸去來辭 등을 보라. 시속에 환상적인 그림이 펼쳐진다. 잠시 전시장에 걸렸던 宋翼弼의 <幽居>라는 시의 일부를 감상해보자.
花低香襲枕 꽃이 낮게 피니 향기가 베개에 스미고
山近翠生衣 산이 가까우니 푸른빛이 옷에 감도네.
雨細池中見 비가 가느니 못 속에서나 보이고
風微柳上知 바람이 잔잔하니 버들가지 끝에서나 알게 된다.
무곡은 不器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잘 어울린다. 그는 늘 順理를 강조하기에 글씨가 유연하고 원만하며 부드러워 세상 모두를 포용할 듯하다. 방필을 사용하면 단정한 반면 글씨를 작게 써야 하지만, 원필은 같은 공간이라도 크게 쓰는 것이 좋아 보였는지 그는 원필을 주로 사용한다. 또한 무곡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도 그의 작품을 둘러보면 유불선의 경계를 넘나든다. 성경구를 기록한 6폭 병풍이 있는가 하면 般若心經이나 父母恩重經도 등장한다. 또한 漁父辭 視聽言動箴 歸去來辭 등이 나타나니 참으로 무곡의 마음에는 정해진 틀이 없어 보인다. 아마 무곡은 다음의 문구를 끊임없이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을 순리라고 여기면서……
魚得水逝 而相忘乎水 鳥乘風飛 而不知有風 識此 可以超物累 可以樂天機
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지만 물의 존재 잊고 살며, 새는 바람을 타고 날지만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를 안다면 사물의 구속을 초월하여 천지의 운행을 즐길 수 있으리라.
축수시를 주제로 전시를 치르려니 사람들에게 강요는 할 수 없어도 이번 잔치에 어울리는 시 한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茂谷崔錫和古稀展을 첫머리에 사용하여 七言律을 지었다. 칠순잔치를 축하하는 詩인만큼 간략하나마 무곡의 인생을 조명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모쪼록 무곡선생 내외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마지 않는다.
茂德忠魂祖龍仁 성한 덕 忠節의 혼 용인이 祖宗으로
谷民崇慕圃公眞 촌민들은 포은공의 진실함을 흠모했네.
崔門草屋輝婁奎 최씨댁 초가집에 奎婁星이 빛나더니
錫嘏城山誕絶倫 石城山에 福이 내려 뛰어난 이 태어났지.
和極妙書驚萬客 中和의 도 절묘한 글씨 萬客들이 놀랬고
古穿能畵悅千賓 古典을 천착한 그림 千賓들이 즐겼으니
稀杯衆傑祈康壽 축수잔에 중걸들은 康壽를 기원하고
展拜兒孫祝兩親 절하는 兒孫들은 兩親을 祝願하네.
을미년 더운 여름 근사재에서 도곡 홍우기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