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과 글감/도곡논단

책이 열리는 나무

향수산인 2014. 4. 22. 11:44

 

 

 

[책이 열리는 나무] 2014 봄 vol.13

군포 이 사람

마음을 비우다 쏟아내다 -서예가 홍우기

/ 글 김승희ㆍ사진 김성동

‘예술가’라는 그릇에 서예가를 담으려 했다. 아무래도 그게 어울리지 싶어 의심할 생각도 안 해봤다. 이 군포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서예가 홍우기 씨는 철학자에 가깝다. 글씨를 쓰는 것이 ‘마음을 비워야만’ 예술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렇게 보였다.

 

‣ 붓글씨의 매력

서예가 홍우기 씨가 붓을 쥔 계기는 불교경전에서 비롯됐다. 경전 공부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더 잘 이해하려면 한문을 배워야겠기에 중어중문학을 선택했다. 대학을 다니고 보니 막상 수업은 중국어회화나 중국문학에 치우쳐 있었다. 답을 알아낼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문자학을 공부할 요량으로 홍 씨는 ‘최초의 옥편’이라 일컬어지는 설문해자를 펼쳐들었다. 설문해자는 고대의 한자 서체인 전서로 쓰여 있다. 이 고서적을 파고들면 옛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고, 경전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려면 먼저 전서를 알아야했다. 그는 동네에 있는 서예학당을 모조리 돌아다녀봤지만 전서를 아는 훈장은 없었다. 아쉬운 대로 서예부터 배우고 보자는 심산으로 붓을 들었는데, 홍 씨는 그만 붓글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그게 벌써 1985년의 일이다.

홍우기 씨는 전서, 예서, 행서, 해서까지 글씨체마다 역사를 꿰고 있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한 보따리 이야기가 되돌아온다. 단지 답을 아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그의 집요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서예에 매력을 느낀데에는 학문으로서 미개척분야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서예는 옛 지식층인 선비들이 향유했던 문화임에도 논문과 같은 연구서적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사람들이 서예의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 탓이죠. 한 예로, 아무렇게나 방치된 추사 김정희의 비문을 발견할 때도 있었습니다. 추사의 글이라는 것만으로도 문화재가 되기에 충분한데 탁본을 뜨거나 훼손해도 누구하나 막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이런 씁쓸한 현실은 제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말해줍니다.”

그는 훗날 ‘한국 서예사’를 쓸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 망자에게 띄우는 연서

서예는 우리가 지켜야할 전통문화인 동시에 인간성 회복에 필요한 수단이기도 하다는 게 홍우기 씨의 생각이다. 그 중요한 몫으로 홍 씨는 만장을 꼽는다.

“예전에는 마을에 누군가 죽으면 어떻게 살다 갔는지 어떤 사람들이 슬퍼했는지를,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기원문과 함께 자세히 적어요. 이걸 만장이라고 합니다. 깃발로 만들어 상여 행렬 앞에 세우는데, 그 펄럭이는 만장을 보고 우는 사람도 많아요. 애틋한 마음을 담은 일종의 편지 같은 거니까 감동일 수밖에요. 반면에 요즘엔 빈소에 세워진 조화 개수로 죽은 이의 삶을 가늠하죠. 조화가 많으면 많을수록 ‘잘 살았구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거기 모이는 이들은 대부분 상주와 관련된 사람들이예요. 이조차도 슬픔을 나누려 찾아오기 보다는 안 와보면 관계가 껄끄러워지니까 참석하는 거죠. 때론 ‘호상’이라며 울지 않는 상주들도 있어요. 조화나 장례 음식도 돈으로 마련하니, 죽은 이를 위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이 얼마나 슬픈 세상인가요? 지금이야말로 만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어요.”

죽은 이를 애도하는 글귀를 통해 무감각해진 인간의 감성을 일깨우고자 2009년 만장집, <한국의 만장>을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만장 쓰기 운동을 벌여온 데에는 사연 하나가 더 숨어있다.

“2008년에 교통사고로 동생을 갑작스럽게 잃었어요.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충격이 커서 이렇게 보내는 게 맞는 건가 싶으면서도 아무것도 못해줬어요. 장례가 끝나고 나서 미안한 마음에 동생을 위해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만장 번역을 시작해 이듬해에 완성했습니다.”

波瀾萬丈(파란만장) 桎梏人生(질곡인생)걸어오시며

옳은 氣象(기상) 그 하나로 버텨 오신 분.

선생과 한 하늘에 살았다는 것

그 하나도 幸福(행복)한 時間(시간)이어라.

<아름다운 이별, 挽章> 중 3-349번째 만사

 

‣ 마음을 비우는 수련

깨끗한 화선지에 먹을 댈 때 서예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홍우기 씨는 마음을 비운다고 답하며 그 마음가짐을 ‘비’에 비유한다.

“내리는 비를 그대로 담아 놓으면 마시지도 못하고 딱히 쓸 데가 없어요. 하지만 땅에 스미도록 두면 샘물이 되죠. 서예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손으로 글을 쓰고 다음엔 머리로, 더 지나면 마음으로 쓰다가 나중엔 아무 생각 않고 마음을 비울 때 자신도 모르게 담겨 있던 것이 쏟아져 나와요. 동양 예술은 간절함 속에서 묻어나는 것이기에 아름답습니다. 짧은 시간 배워서 나오는 건 없어요. 많은 경험이 바탕이 돼서 글씨로 아름답게 승화돼 나올 때 명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예는 그런 의미에서 자기수양과도 같아요.”

서예가 홍우기 씨는 종이에 철학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인문학을 갈구하는 책 읽는 도시, 군포에 사는 건 어쩌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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