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歌
十月層氷上 시월 층층 얼음 위
寒凝竹葉栖 차갑게 언 댓잎 자리에서
與君寧凍死 그대와 차라리 얼어 죽을지언정
遮莫五更鷄 오경(五更)이라 닭이여 울지를 마라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시이다. 음력 시월이면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걸쳐있는 초겨울이다. 앞으로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을 거칠 것이니, 시월은 이제부터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절임을 암시한다. 같은 추위라도 정월이라면 따뜻해질 기대라도 있으니 가혹하다는 생각이 덜하다. 지금이 시월인데도 층층 얼음이 얼었으니 앞으로 더욱 추워질 것이고 이렇게 밤을 새우다간 언제 얼어 죽을지 모른다. ‘차라리 얼어 죽을지언정’ 이란 말이 절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잔혹한 순간에도 ‘오경이라 닭이여 울지를 마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얼마나 간절하고 처절한 시어(詩語)인가? 그 추운 밤을 둘이 지새웠을 텐데, 더구나 볏짚이나 낙엽이라도 듬뿍 쌓인 곳이 아니라 여름에도 시원한 대숲이니 얼음이 얼고 그 위에 얼어붙은 댓잎이 깔려있는 곳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사방이 어두워 누가 있으리라고 짐작할 리 없는 이곳이 바로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면 정상적인 관계는 분명 아니다. 새벽닭이 울고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보고 알까 무서워 부득불 헤어져야 한다. 남녀는 이 상황이 얼어 죽기보다 싫다. 이는, 내외의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 그것도 집현전 학자로 유명한 사람, 더구나 신미대사와 함께 불교서적 편찬사업에 공이 많았던 김수온의 <술악부사(述樂府辭)>라는 시이다. 아무리 고려가사를 풀어 쓴 것이라고 해도 자신의 문집에 이렇게 절절한 시를 실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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