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眞草千字文(隋, 智永)
지영(智永)의 생졸 년대는 자세치 않고 세속의 성씨는 왕(王)씨이다. 불명은 법극(法極)이고 진, 수(陳隋) 사이의 명승이며 회계(會稽, 浙江省 紹興) 사람이다. 그는 왕희지의 7대손으로 형인 효빈(孝賓)과 함께 산음의 영흔사(永欣寺)로 출가하여 ‘영선사(永禪師)’라 불렸으며 수나라 때 가장 유명한 서예가였다. 『선화서보(宣和書譜)』의 기록에 의하면 “서예에 뜻을 둔 이후 가법을 전수 받았을 뿐만 아니라 널리 전 사람들의 장점을 흡수하여 탁월한 서예가가 되었다. 그에게 글씨를 구하려고 오는 자가 너무 많아 문지방이 닳아서 쇠로 덮어야 할 정도였다. 그러므로 이를 철문한(鐵門限)이라고 불렀다. 지영은 닳아빠진 붓털을 다섯 개의 커다란 바구니에 넣어 이를 묻어 무덤을 만들고는 퇴필총(退筆冢)이라고 했다.”라고 했다. 또한 지영은 영흔사에서 30년간 글씨를 쓰면서 <진초천자문> 800본을 써 절강성 일대의 사찰에 골고루 나누어주었는데 이 묵적은 그 중의 하나이다.
<진초천자문>은 지본(紙本)으로 초서와 해서를 섞어 행마다 10자씩 202행을 썼다. 원본은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소천간재(小川簡齋)씨가 소장했다. 이외에 각석본이 있는데 ‘관중본(關中本)’이 가장 좋으며 송나라 대관(大觀, 1107-1117) 연간에 새겼다.
지영은 왕희지의 서예를 전하면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장회관은 『서단』에서 “지영은 멀리 왕희지를 잇고 역대 명가의 정수를 취해 일가를 이루었다. 특히 해서와 초서에 뛰어났는데 화평함은 아래로 구양순, 우세남에게 전해주었으며 정숙함은 양흔, 박소지를 능가했다.”라고 했다. 이는 지영 서체의 주요 특징이 화평하고 윤택하면서도 필묵이 정숙함을 말한 것이다. 이사진도 『서후품』에서 “정숙함이 뛰어나나 기이한 자태가 없는 것이 아쉽다.”라고 했다. 지영의 용필을 보면 확실히 왕희지가 측필로 형세를 취한 특징을 다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의 해서를 보면 기필은 대부분 측면으로 붓을 대어 봉망을 뾰족하게 드러내면서 역입평출(逆入平出)의 방법을 거의 채용하지 않았다. 이는 붓을 대는 각도와 형세 그리고 경중의 다름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와 많은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른바 측필로 연미함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용필의 가볍고 영활함은 마치 힘을 들여 쓰지 않은 것처럼 긴장되고 장엄한 느낌이 없다. 동시에 운필은 행서 필법을 섞고 때로는 견사를 띠며 매우 활발해 점과 획이 날아 움직이고 정취가 물씬거린다. 초서의 용필은 해서와 달리 허공에서 곧바로 누르고 들어 두텁고 착실하며 필치가 둥글고 유창하여 맑고 굳세면서 전아하다. 설령 서체는 다르나 용필의 원칙은 일치하는 것이니 모두가 모필의 필성에 따라 운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필이 넓게 펴졌을 경우 전절과 수필을 할 때는 먼저 붓털을 들어 원상태로 만든 다음 다시 운필을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작품에서 때때로 나타나는 아두구(鵝頭鉤)와 붓털을 드러내고 감추는 원인을 잘 음미해 볼만하다. 이 작품의 서풍은 매우 담담하고 우아하여 소식에게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소식은 이 작품에 대해 “지영의 글씨는 골력과 기운이 깊고 온건하며 글씨체에는 모든 묘한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그는 정미하고 능숙함이 지극하여 오히려 성글고 담담한 데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는 마치 도연명의 시를 보는 것과 같다. 그의 시를 처음 보면 아름다움이 흩어져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반복하여 이를 읽으면 이에 그 기이한 정취를 알 수 있다.”라고 했고, 또한 “지영은 왕희지의 법도와 풍격을 보존하여 모든 서예가에게 법과 종주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에 옛날 법을 운용했다. 그는 새로운 뜻을 내어 형태의 변화를 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나, 그의 뜻은 이미 법도의 밖을 초월했다. 지영의 글씨가 구양순과 우세남의 아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한 평론이 아닌 것 같다. 만약 지영의 글씨가 단지 임모와 본뜨는 것이라고 회의를 하는 자는 또한 이러한 평론보다 아래에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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